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1995년 서울 서초구 상품백화점 붕괴. 그리고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의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대형 사고의 이면엔 인·허가나 공사 과정 등에서 불법·편법의 그림자가 있었다. 불법적인 설계나 구조 변경, 불법 하도급, 안전 수칙 미준수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현장에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이 부실시공의 최대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정부는 2018년 종합·전문건설업체가 각각 상대 업역의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80% 이상 직접시공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후 관련 제도는 지난해 공공공사를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갔고 올해 민간공사까지 확대했다. 불법 하도급 관행의 원인으로 지적된 업역 규제를 폐지함으로써 상대 업역 진출 시엔 직접시공 원칙을 준수하고 다단계 생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행 1년여 동안 불법 하도급 문제는 근절되거나 개선되지 않고 있다.
(1) "일단 따고 보자"… 공사 계약만 해놓고 불법 하도급
(2) "일감 빼앗긴다"… 중소 종합업체 VS 대형 전문업체 경쟁
(3) "종합·전문건설업 구분 현실에 안 맞아"… 업종 폐지 추진
![]()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업체들은 종합공사를 수주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로 공사 업역 폐지가 불공정 경쟁과 불법 하도급을 고착화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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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종합·전문건설업계가 노·사·정 합의를 이룬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의 업역 규제 폐지가 시행 1년여 만에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제도가 시행된 배경에는 다단계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겠다는 명분이 있었다. 시공능력 있는 건설업체가 업역 제한을 받지 않고 공정경쟁을 통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하되 이때 직접시공 80% 의무를 준수함으로써 다단계 생산구조를 개선해 나가자는 취지였다.
대체로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업체들은 종합공사를 수주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로 업역 폐지가 오히려 불공정 경쟁과 불법 하도급을 고착화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2018년 로드맵 발표 당시 전문건설업계는 그동안 일감을 빼앗겨온 '시설물 유지관리 공사업'의 종합건설업 전환과 전문건설업체 컨소시엄 구성 허용 등의 인센티브를 받는 대가로 업역 폐지에 합의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하도급 관행'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 조사 결과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다단계 불법 하도급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문건설업계는 업역 폐지 이후에도 불법 하도급이 근절되기 쉽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종합건설업계는 상호 공사를 진행한 전체 현장 대비 불법 적발률이 1%대 안팎으로 미미한 상황이어서 이 같은 현상은 제도 시행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시행착오일 뿐이란 입장이다.
실제 해당 사고 이후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종합·전문건설업 간 상호 진출 공공공사에서 직접시공 80% 규정 준수 여부를 특별조사한 결과 2401개 현장 가운데 1.9%인 46곳에서 불법 하도급 행위가 적발됐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엔 함정이 있다. 국토부가 특별조사한 현장은 전체 2401곳 중 136곳에 불과했다. 조사 현장 대비 적발률은 33.8%에 달한 것.
국토부는 올 8월에도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2021년 10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진행된 4800개 상호 공사 현장 가운데 16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4건의 불법 하도급 행위가 드러났다. 조사 현장 대비 적발률은 21.1%로 직전 조사보다 12.7%포인트 낮아졌지만 10곳 중 2곳 이상의 현장에서 여전히 불법 행위가 있었다.
이들 사업자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하도급 규정 위반으로 1년 이내 영업정지 또는 위반 금액의 30% 이내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게 된다. 위반 사안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분도 받을 수 있다.
![]()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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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업역 폐지가 대형 전문건설업체의 소규모 종합공사를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의견도 제기됐다. 업역 폐지의 표면적 이유는 시공능력 있는 업체가 공정경쟁을 해 공사를 수주하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 교문을 철거해 재설치하는 공사를 수주하는 곳은 그동안 종합건설업체였는데 토공, 콘크리트, 철근 등 여러 개의 면허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시공은 대부분 각 분야별 면허를 보유한 전문건설업체가 하도급을 제공받아 진행했다. 이제는 전문건설업체가 직접 종합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 입장에서 현대건설 상호를 보고 건물을 샀는데 실제 전문업체 여러 곳이 지은 것이고 현대건설은 일부도 시공을 안한 문제가 있었다"면서 "그동안 전문업체는 수주를 하면 직접시공을 하지만 종합업체는 전문공사를 따면 하도급을 줬다. 종합업체 역량을 향상시키자는 것이 업역 폐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종합건설업체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전문건설업체 중에도 대기업이 있는데 상호 공사 진출로 인해 중견 종합업체, 대형 전문업체의 일감 싸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가 조달청 나라장터와 공공기관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종합건설업체가 수주한 전문공사는 1조5493억원(8.9%), 전문건설업체가 수주한 종합공사는 4046억원(1.2%) 등으로 나타나 금액 기준 3.8배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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