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5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 <원 마스터피스 - 나의 두 번째 아트컬렉션> 전시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롯데백화점
지난 7월 1~25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 <원 마스터피스 - 나의 두 번째 아트컬렉션> 전시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롯데백화점

전통적으로 백화점의 1층은 ‘얼굴’로 통한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각종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 코너. 하지만 이런 불문율을 깨는 백화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 8월 20일 개점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백화점 1층=코스메틱 브랜드’의 관행을 깨고 각종 미술 작품들로 고객들을 맞이했다.

넓은 통로와 높은 층고, 확 트인 백화점 내부에서 단연 눈길을 끈 건 가로 8m에 달하는 크기의 아트월이다. 1층에는 영국 미술계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창작한 아트월 ‘인 더 스튜디오, 디셈버 2017’(In the Studio, December 2017’을 비롯해 스크린에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가 설치됐다. 동탄점은 전 층에 걸쳐 100점이 넘는 미술품들을 전시했다.


백화점의 미술품 전시·판매는 롯데백화점이 처음이 아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8월 강남점을 리뉴얼하며 3층에 미술품 전시·판매 공간인 ‘아트 스페이스’를 오픈했다. 올 3월 주주총회에선 ‘미술품 전시·판매·중개·임대업 및 관련 컨설팅업’을 사업 목적에도 추가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은 미술품 팝업스토어를 열고 가나아트와 함께 VIP 고객의 자택을 방문해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제안하는 홈아트워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부터 판교 아트 뮤지엄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회화, 사진, 오브제, 조각 작품 등 120여점을 채운 아트 스페이스를 오픈했다./사진제공=신세계백화점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회화, 사진, 오브제, 조각 작품 등 120여점을 채운 아트 스페이스를 오픈했다./사진제공=신세계백화점

온·오프라인 판매 경쟁도 치열

국내 백화점들의 갤러리화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방문객이 감소한 데 따른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위기가 한 원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업계에서 오프라인 업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3.5%다. 같은 기간 온라인 업체의 매출 비중은 46.5%로 온·오프라인 격차가 7.0%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2018년 24.3%포인트, 2019년 17.6%포인트를 기록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매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온라인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18.4% 늘어난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3.6% 감소했다. 특히 백화점 매출은 9.9% 하락했다. 

백화점들은 위기 대응 차원에서 ‘아트 비즈니스’를 신사업으로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술품 전시·판매를 통해 집객 효과를 노리는 것. 미술품 판매는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매장 방문객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온라인과 차별성을 두려면 ‘경험’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며 “미술품으로 방문객을 유인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트 비즈니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신세계 온라인 패션몰 ‘에스아이빌리지’는 미술품의 온라인 판매까지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술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MZ세대에 인기 있는 작가 위주로 작품을 선정됐다. 제프 쿤스, 데이비드 걸스타인, 앤디 워홀, 최영욱 등이다. 가격은 10만원대부터 60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롯데백화점도 자체 앱에 온라인 미술품 플랫폼 ‘롯데 갤러리관’을 마련해 국내·외 유명 작가 100명의 원화, 에디션, 드로잉 작품 340점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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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리뉴얼 후 명품 매출 37%↑… 성공적?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8월부터 올 7월까지 작품 400점 이상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 5월 ‘마이클 스코긴스 기획전’을 연 첫날 전시한 11점 가운데 10점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백화점도 지난 6월 29일 시작한 아트롯데 전시에서 목표 매출을 달성했다. 다만 롯데백화점은 판매량, 거래액 등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미술품 전시가 명품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통계도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미술품이 전시된 2층과 3층은 명품과 준명품을 다루는데 지난해 리뉴얼 직후 8월 21일~9월 20일 한 달 동안 명품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37.1%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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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재테크시장 ‘그들만의 리그’ 깰까

업계 관계자들은 백화점의 아트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MZ세대’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발간한 ‘미술시장 2021’(The Art Market 202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미술품시장 판매액은 약 501억달러로 2019년(644억달러) 대비 22.0%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 판매액은 2019년 60억달러에서 두 배 성장한 124억달러를 기록했다. 온라인 거래 비중도 2019년 9.0%에서 2020년 25.0%까지 증가했다.

미술품을 구매한 자산 100만달러 이상 수집가 2569명 중 절반 이상인 56.0%는 MZ세대로 나타났다. 신진 컬렉터로서 미술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미술품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재테크수단이다. 또래 연예인들이 신진 컬렉터로서 미술품을 소장한다는 점도 MZ세대가 아트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다. 빅뱅 태양, 방탄소년단(BTS) RM 등 젊은 연예인들이 고액 자산가들만의 성역이던 미술품시장에 진출해 진입문턱을 낮췄다는 분석이다.


다만 백화점의 아트 비즈니스가 지속성을 갖기 위해선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던 기존 국내 미술시장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통트렌드컨설팅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정보 불균형, 폐쇄성 등 대중과의 괴리가 있는 기존 미술시장과는 달라야 한다”며 “온라인 판매 채널을 통해 판매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오프라인 채널도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보 공개에 대한 요구는 기존 미술시장에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백운아 대표는 “백화점의 아트 비즈니스를 판매 채널의 다양화로 봐야 한다”며 “백화점의 진출로 미술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하고 다양한 계층이 컬렉터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