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인 7000척 이상의 상선대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 상선대 규모는 200척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선분야에서도 중국은 세계 조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반면, 미국의 선박수주는 연간 5000척 내외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이 미 해군을 제치고 함정수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미 국방부의 최근 중국 전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370척 이상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290척을 앞서고 있고, 향후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지난 20년 이상 미국이 자국 상선대 육성 지원에 소극적이었고, 자국 내에서 상선을 안정적으로 건조할 관련 산업 및 인력기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의 조선 및 해운 산업에 대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동안, 미국기업들은 변동성이 크고 수익성이 낮은 해운 및 조선에 투자하는 대신, 수익이 높고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분야에만 투자해 온 결과이다.

그러던 차에 2024년 미 철강 노동조합 등이 미 무역대표부에 제기한 중국 조선, 해운, 물류산업의 불공정 행위 규제 청원을 하였고, 미 무역대표부는 중국 보조금이 미국의 조선, 해운의 점유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를 불공정 무역행위로 보아 무역법 301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국 해운·조선에 대한 제재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자국 해운·조선을 지원할 명문이 생긴 것이다.


미국은 법과 행정명령 등을 통해 중국의 해운·조선 시장 주도를 제한하고 해운과 조선 능력의 재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해운·조선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 의회 공화당, 민주당 양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미 조선산업 지원 법안(Ships for America Act)에서 미국은 수십 년간 방치해 온 해운, 조선산업을 재건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도록 미 국적의 전략상선대 250척을 건조, 운영하고 자국 내 조선소 건조능력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SHIPS Act를 통해 중국산 선박, 중국 해운사 및 중국 조선소를 제재하는 한편 자국조선업 투자를 위한 신탁기금을 조성하여 조선소 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 능력 부활과 미 국적 상선대의 확대는 현재 미국 내 인력 및 산업기반, 비용구조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도전이다. 미국의 여러 전문가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금년 4월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한국 조선소를 둘러보며 미국 조선소에 대한 투자 확대를 촉구하는 한편, 미국 조선소의 건조 속도와 역량 부족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이 숙련된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국 내 역량을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충분한 전함과 상선대를 신속하게 건조, 대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조선소에서 상선을 건조하는 일은 이러한 한계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백악관이 밝힌 11월 14일 한·미정상회담에 따른 팩트시트에는 해운·조선 관련 협력방안 내용이 포함되었다. 우선 한국은 미국 조선 부문에 1500억 달러 투자를 추진하며, 양국이 조선 실무협의체를 구성해서 유지보수 및 정비(MRO), 인력양성, 조선소 현대화, 조선 관련 공급망 회복 등의 분야에 협력하기로 했다. 협력방안 중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미국 상선과 군함의 수를 신속하게 증가시킬 것이며, '한국에서 미국 선박을 건조할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이다.

미국은 한국에 자국 조선소 현대화를 위한 투자를 요청하는 동시에 신속한 상선 건조를 위해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적 선박 건조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은 자국 조선소 부활뿐 아니라, 상선대 확충을 위해 한국이 금융 및 보증을 제공하여 미국의 전략상선대 등을 건조하는 방식이 포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큰 틀에서 보면 미국 등이 필요로 하는 선박을 중국 조선소 대신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건조비 차액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조선소 견제라는 무역법 301조 위반 보고서의 지적에 부합하는 정책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한·미 조선실무협의체를 통해 1500억 달러의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동맹국 자산과 역량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러한 논의 속에서 해운·조선 강국이자 핵심 동맹국으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충분히 부각시켜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동반 발전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