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4회 한국은행-대한상공회의소 공동 세미나 'AI기반의 성장과 혁신'에 참석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뉴시스


최종현학술원이 9일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최종현학술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민간 싱크탱크다. 보고서는 미국이 300GW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을 공식화하고 러시아와 중국 등이 핵연료·원전 공급망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한국이 직면한 상황을 다뤘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11월 '한미 원자력 동맹의 심화와 산업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열린 회의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핵연료주기·핵추진 잠수함 등 원자력 전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미 원자력 협력 방향을 재점검했다. AI 기반 전력 수요 증가에 따른 에너지 인프라 확충, 한국 원전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의 전략적 활용, 핵연료주기 협력의 지정학적 의미 등이 핵심 쟁점으로 제시됐다.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발간사에서 "원전·SMR·핵추진 잠수함·우라늄 농축·재처리는 개별 기술 이슈가 아니라 한국 중장기 국가전략을 결정하는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 공조 확대와 국제 협력 논의가 본격화된 지금, 한국은 동맹과 비확산 체계 내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산업적 주도권을 확보할 길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핵추진 잠수함 협력에 대해서는 "이번에 우리가 확보한 것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국가전략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며 유연하고 최적화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핵잠이 한미 연합 억제력 체계에서 실질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은밀성과 핵추진의 지속성을 결합한 전략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보고서는 원전 건설 필요성도 강조했다. 미국이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선 배경을 짚으며 AI 시대 최대 병목인 전력 공급 문제를 부각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미·중 간 전력설비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기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 장치 산업 전반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원전 EPC 역량이 이미 글로벌 표준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UAE 바라카 3·4호기와 새울 1·2호기만이 예산과 공정을 모두 지킨 유일한 프로젝트"라며 "혹독한 사막 환경에서도 성과를 낸 것은 APR1400의 설계·건설·운영 능력이 국제적으로 검증됐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 원전 강국임에도 핵연료주기와 원천기술 부문에서는 구조적 취약성이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EPC·운영·사업관리 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유한 반면 미국은 차세대 SMR 설계·지식재산권(IP)·외교력·기술 원천성에서 우위를 가져 양국 역량이 "비대칭적이지만 상호보완적 구조"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가장 큰 리스크로 농축·재처리 기술 및 인프라 부재를 꼽으며 "이 구조가 지속되면 에너지 안보의 핵심 취약점으로 남게 된다"고 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뒤 공개된 팩트시트의 '민간 농축·재처리' 문구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이를 전면 허용한 것이 아니라 절차적 검토를 인정한 수준일 뿐"이라며 "이를 곧바로 실질적 허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SMR 확장은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솔루션 사업단장은 "SMR 확장을 위한 한미 협력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탈탄소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빅테크와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이미 여러 SMR 업체와 협력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규 원전 건설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SMR이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단장은 "4세대 SMR은 부지 제약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재생에너지와의 보완적 운영도 가능하다"며 "사용후핵연료 발생량도 기존 경수로 기반 SMR 대비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운용 효율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