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국처럼 자체 신뢰 기반이 완벽하지 않은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하는 전략은 자칫 편익보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2022년 Terra 붕괴 사태가 보여주듯, 스테이블코인의 실패는 금융 시스템 전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2023년 실리콘은행 파산 시에 전액예금 보장이라는 극단적 비상조치를 통해 금융안정을 회복시킨 점은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통합환경에서 금리인상과 코인런의 발생시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거시 체제마저 최근의 디지털 자산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기존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는데다 양극화 심화등 패러다임상의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토큰화의 가능성을 본격 모색하기 시작했다. 실제 2025년 들어 실물·전통자산(RWA) 토큰화는 국채·MMF에서 뚜렷한 상업적 성과를 냈고, 블랙록의 BUIDL은 17억달러를 넘어서는 규모로 성장하며 담보로도 수용되었다(BlackRock 공식 데이터 기준). 이는 달러 생태계의 경우 토큰화가 "기술 데모"를 넘어 운용·청산 효율의 실익이 확인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싱가포르 MAS의 프로젝트 가디언은 '블록체인 위 결제만'을 강요하지 않고, 기존 스위프트 인프라를 활용한 오프체인 법정화폐 정산 파일럿을 통해 자산 토큰화와 기존 결제의 연계를 입증했다. 규제 측면에선 EU가 MiCA로 스테이블코인 규정을 2024년 6월부터 우선 적용해 발행·준수 요건을 정비했고, 이는 토큰 관련 글로벌 규제의 벤치마크가 되고 있다. BIS는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 중앙은행·상업은행 예금·국채가 한 장부에서 작동하는 토큰화된 통합원장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존 체제의 연결기반 위에서 디지털 금융을 접목하여 구체적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련의 시도이다.
이러한 추세속에서 비기축통화국의 입장은 위에서 지적한 다양한 준비외에도 각자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조율되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사용은 지급 수단의 부분적 달러화를 촉진할 수 있고, 환율·자본 흐름 변동성, 은행 예금 잠식, 통화 정책 파급 경로의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달러 대비 수시로 변동성을 보이는 비기축 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 효과적인 대응책으로의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암호화폐의 안정성은 궁극적으로 법정화폐 기반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연결 고리를 확실히 하면서 민간 주도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한 방향설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 디지털 전략의 순서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첫째, '우리 주변부터' 새로운 가치를 인식하고 키워감으로써 토큰화의 실익에 대한 다수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수년전 STO 도입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법과 규제 정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신규 영역에서 사업적 가능성을 발굴하는 것은 기존 규제 환경 하에서 혁신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새로운 다양한 시도는 샌드박스 내에서 적극 허용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술의 혁신성과 더불어 가치발굴을 통해 잠재적 시장 수요를 끌어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일시 중단된 한국은행의 CBDC 파일럿 프로젝트가 이러한 토큰화와 연계된 실증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 전반적인 요건 점검과 준비가 생략된 토큰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기존 체제와의 접목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이 불가피하다.
둘째, 비기축통화국의 입장에서 결제영역은 국경 간 흐름을 수용하되 국내 통화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다란 도전에 부응하면서 통화 주권을 지키려면 흔들리지 않는 준비 자산과의 연결 고리가 필수적이다.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의 독자적 주도보다는 토큰화된 예금(은행 부채의 토큰화)이나 RTGS 연계 전자금, 향후 도입될 도매형 CBDC와의 연동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i) 통화·만기 불일치 한도, (ii) 고객 자산 링펜싱, (iii) 준비 자산 투명 공시, (iv) 온·오프램프의 자금 세탁 방지(AML/CFT) 통제를 전제로 한 활용방안을 설계한다. 이는 '화폐의 단일성'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국제 결제의 편의를 확보하려는 절충안이다.
셋째, 상호 운용성과 표준을 병행 구축해야 한다. 토큰과 메세징, 결제가 분절되지 않도록 계약 표준·데이터 모델·커스터디 요건을 선행 정비하고, 국내 실증과 동시에 글로벌 파일럿(가령 MAS의 Guardian Project)에 참여해 규제·기술 상호 인정을 넓히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조기 스케일의 병목인 "규제 불확실성"과 "결제 레일 단절"을 동시 완화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의 CBDC 재개 움직임과 연계해 국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리하면, 디지털 전환기에 기존 기능의 효율화 수단으로서 토큰화는 새로운 가치 창출 →결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모색하는 순서가 맞다. 예로 서민 경제의 활성화나 기후 환경 및 공급망 등의 분야에서 진입 장벽을 낮추는 토큰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유동화·담보화·자동 정산의 효익이 발생하는 현실 과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이를 뒷받침하는 결제 레일로서 스테이블코인의 선별적·제한적 활용을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기축통화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시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토큰화가 약속한 효율성과 포용성을 눈에 보이는 성과로 연결할 수 있다. 이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정책–시장–금융을 한데 묶는 지속 가능한 토큰경제의 실용적인 로드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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