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사진은 윤 전 대통령이 재직 시절 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윤석열' 캡처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에 따라 군 병력이 움직였다. 장갑차가 국회로 향하는 장면까지 포착되면서 순식간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시민과 국회의 즉각적 대응으로 몇 시간 만에 계엄은 철회됐다. 하지만 그 여파는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충격의 그날, 국회를 향한 군의 움직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입구를 통제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3일 밤 10시27분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국회는 즉시 긴급 회의에 돌입했다. 본청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일부 국민의힘 의원 그리고 국회 직원들이 출석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러던 중 특수부대 병력이 국회 안으로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당직자들과 군 병력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군은 본청사 유리창을 깨고 국회 내부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장갑차 앞을 가로막고 군 병력의 접근을 저지하며 평화적 시위를 이어갔다. 계엄은 시민들과 국회의 즉각 대응으로 선포 몇 시간 만에 철회됐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법정에 선 핵심 인사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사진은 지난 7월14일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는 모습. /사진=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계엄 여파는 컸다. 국회는 계엄 선포 10일 뒤인 지난해 12월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대통령 직무는 즉시 정지됐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4월 탄핵을 최종 인용하며 윤 전 대통령 파면을 확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현재 내란(반란) 혐의, 권한 남용, 국회 기능 마비 시도 등 중대 범죄로 구속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계엄 준비·집행 과정에 연루된 핵심 인물들도 모두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다.

계엄 사태는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6월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 정권에 대한 불신과 민주적 통치 질서 회복 요구가 높은 지지를 받았고 이는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해외 언론 역시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주목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던 순간으로 계엄 사태를 주목했다. BBC와 뉴욕타임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국회와 시민이 평화적·민주적으로 대응한 과정을 높이 평가하며 단기간 내 계엄 철회가 가능했던 점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도했다. 시민과 의회가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례로 주목하기도 했다.
계엄 선포 후 1년, 되살아난 민주주의와 깊어진 분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사진은 지난 6월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모습. /사진=뉴스1(대통령실 제공)
계엄 1년이 지난 현재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척결을 강조하며 제도 개선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일부 시민층에서는 극우적·권위주의적 사고가 강화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참여와 민주적 권리 강화 요구가 증가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세대간 격차도 맞물리면서 정치적 극화와 사회적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 상황이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몇 시간 만에 철회됐다. 하지만 그날의 충격과 이후 과정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