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자금난으로 벼랑 끝에 몰린 동양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동양그룹은 그동안 계열사 매각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구조조정 성과가 미진했다. 여기에 동서지간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조차도 지원에 난색을 표하면서 9월30일 만기인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상환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동양그룹은 부도를 막기 위해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재 법원은 이들 계열사에 대한 재산 보전 처분을 내린 상태다. 동양그룹은 과연 현재현 회장 중심의 지배 구조를 이어 갈 수 있을까.
◆타이밍 놓친 동양그룹
동양그룹이 해체 수순까지 밟게 된 데는 타이밍을 놓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헐값에라도 서둘러 자산을 처분했어야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양그룹 위기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12월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시멘트, 화력발전, 금융 등 3개 축으로 핵심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비핵심 자산을 팔아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과 회사채 빚을 갚겠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훗날 돈이 될 자산을 확보하겠다는 노림수를 두면서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동양네트웍스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장모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오리온 지분 2.7%를 무상으로 대여 받았는데 이 주식을 팔아 마련한 현금 1645억원으로 위기에 빠진 계열사 살리기에 치중했다. 동양네트웍스는 이 자금으로 동양레저 소유의 경기 안성 웨스트파인 골프장을 793억원에 인수했다. 1년여간 주인을 찾지 못한 매물이었다. 또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음에도 ㈜동양으로부터 바둑 사이트 '타이젬'을 운영하는 동양온라인 지분 41.5%를 62억원에 매입하며 계열사의 위기를 떠안았다.
동양그룹이 지난해 12월 구조조정 착수 이후 지금까지 매각한 사업은 폐열발전소(400억원), 레미콘공장(1145억원), 선박(350억원), 냉동창고(345억원), 파일사업부(1170억원), 주식(1600억원) 등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목표치의 28%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 구조조정 의지 부족?
동양그룹이 해체 위기에 몰린 데는 구조조정에 대한 현 회장의 의지가 부족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 회장은 매각 중인 동양매직 지분을 다시 사들이는가하면 동양증권 등 알짜사업은 아예 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컸지 실제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없었던 점도 현 회장의 의지 부족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랬던 현 회장이 행동을 바꾼 건 지난 9월23일 동서지간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분의 담보제공을 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다. 여기에 채권단의 추가 지원 난색과 금융감독원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회사채 발행에 제동을 거는 등 위기 극복 카드의 불씨가 꺼져가면서 그룹 해체와 일부 계열사의 파산 가능성이 높아지자 현 회장이 특단을 내렸다.
현 회장은 미래를 책임질 구심점으로 여기던 삼척화력발전소 사업권을 소유한 동양파워를 매각하기로 했다. 동양그룹은 지난 2월 삼척 화력발전 사업자로 선정된 데 이어 7월에는 정부로부터 발전사업자로 공식 승인을 받은 유망 사업이었다. 때문에 동양그룹은 동양파워 경영권을 제외한 지분만 매각하려고 했으나 그룹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지분 전량 매각하기로 한 것.
이처럼 현 회장은 동양그룹의 미래 핵심사업인 동양파워까지 내놓으며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 회장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위기를 극복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동양그룹이 처음부터 굵직한 사업을 내놨다면 지금의 위기를 막았을 수도 있었다”며 “현 회장의 뒤 늦은 대응이 계열사 법적관리 신청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 그룹 지배력 잃나
동양그룹은 결국 9월30일 만기가 돌아온 1130억원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막지 못했다. 연내에 돌아오는 회사채와 기업어음 상환 규모는 1조1000억원을 넘어 선다. 동양파워 등 핵심 계열사를 팔아도 막아내기 버거운 수준이다.
이에 동양그룹은 3개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날 모든 채권채무 행사가 동결돼 일단 부도위기는 면했지만 앞으로 동양그룹의 해체는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순환 출자 구조로 돼 있는 핵심 계열사들에 지분 매각 등 자산 처분 명령을 내리면 그룹은 해체될 수 있다. 현 회장 등 오너 일가는 계열사 지분 감자(자본감소)와 출자전환으로 보유 지분율이 낮아져 그룹 지배력을 잃게 될 가능성도 높다.
지금으로선 핵심 사업을 가진 동양시멘트의 회생 여부가 관건이다.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에 대한 워크아웃 신청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등 은행들이 여신을 보유한 동양시멘트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긍정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현 회장은 시멘트 사업을 영위한 동양시멘트를 지켜내 그룹 명맥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만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라 계열사 매각 과정이 어떻게 될지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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