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잇따르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출구전략과 재정정책 확대 등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는 전미경제학회(AEA)가 열렸다. 이날 학회에서는 경제학자들과 연준 위원들 간에 출구전략과 재정정책 확대 등을 놓고 설전이 오갔다.
전미경제학회는 미국 내 경제학과 관련된 55개 학회가 연합해 개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학술 콘퍼런스다. 매년 1월 첫째 주에 미국 주요 도시에서 연례 총회를 갖는데, 올해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됐다.
미 동부지역에 몰아닥친 폭설에 항공기가 대거 결항되면서 마르타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의 개막연설이 화상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해 1만1000여명의 경제학자가 필라델피아를 찾았다.
미국경제가 개선되고 있어서인지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총회에 참석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 등 연준 인사들과 경제학자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올해 미국경제에 대한 전망도 긍정 일색이었다.
하지만 재정확대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 등을 놓고 경제학자들 간 설전이 벌어졌고, 양적완화 추가 축소에 대한 연준 위원들 간 이견도 여전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세미나에서 래리 서머스(왼쪽 첫번째) 전 재무 장관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도미닉 살바토르 포햄대 교수, 로버트바로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프레스코 아리조나주립대 교수,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
◆美 경제 '낙관'…재정·통화정책 '설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지난 3일 연설에서 미국경제 전망을 낙관한 데 이어 4~5일 열린 각종 세션에서도 미국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잇따랐다. 미국경제 성장세가 아직 수준 이하(sub-par)이긴 해도 올해 성장세에 속도가 더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월말 임기가 끝나는 버냉키 의장은 연차총회 연설에서 "경기 회복세가 아직까지 완성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앞으로 몇 분기내 미국 경제성장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보좌관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14년은 (미국경제에) 더 나은 해가 될 것"이라며 "적절한 정책을 쓰면 가까운 미래에 대해 비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재무부 차관 출신인 존 테일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올해 미국의 성장세가 더 강력해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재정 및 통화 정책의 확대' 여부 등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다. 서머스 전 장관은 아직은 긴축을 고민할 단계가 아니며 재정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테일러 교수는 너무 잦은 정책 개입이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테일러 교수는 잦은 정책 개입의 대표적인 예로 양적완화 정책을 들었다. 그러나 서머스 전 장관은 "질병이 발견됐을 때 의사의 역할은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하는 것"이라며 "(FRB의 양적완화 정책과 같은)일반적이지 않은 처방도 때로 효과가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경제의 구조적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놓고서도 이들은 대립각을 세웠다. 서머스 전 장관은 "미국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를 겪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테일러 교수는 "2000년대 중반 미국경제는 인플레이션이 가팔랐고, 고용이 대단히 안정적이었다"며 이를 비판했다.
◆'출구전략' 이견…양적완화 종료시점은 올 하반기?
연준이 지난해 12월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함에 따라 이번 AEA 연차 총회에 참석한 연준 위원들의 발언도 주목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들의 발언에서 연준의 출구전략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고 했지만 출구전략에 대한 연은 총재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연은 총재들은 '출구전략을 잘 마련해야 하고, 자산 버블에 잘 대처하는 게 연준의 도전과제'라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양적완화 축소의 속도 등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다.
연준 부의장으로 임명될 예정인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주재로 열린 '연준의 경제학'이라는 세미나에서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와 에릭 로젠그린 보스턴 연은 총재는 "출구전략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젠그린 총재는 "인플레이션율이 연준의 목표보다 낮은 반면 실업률은 여전히 연준의 목표보다 높다"며 "이 때문에 지난달 양적완화 축소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난달 FOMC 회의에서 "경기상황이 확연히 개선될 때까지 양적완화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며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인내하고 신중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해 연준 위원들 중 유일하게 양적완화 축소에 반대했다.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 역시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연준이 앞으로 출구전략에 신중해야 하고, 금융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는 양적완화를 조기 종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준금리도 빨리 인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플로서 총재는 "연준의 지난달 양적완화 축소는 바른 길로 이동한 것"이라며 "비록 늦었지만 연준이 올바른 방향으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준 위원들이 출구전략에 이견을 보임에 따라 앞으로 연준이 양적완화 추가 축소를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연준이 그동안 수차례 "양적완화 축소가 통화정책 긴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혀왔던 만큼 기준금리는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양적완화 정책은 미국경제가 연준의 전망대로 개선세를 이어간다면 올해 안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8일 연준이 공개한 '12월 17~18일 FOMC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이 위원들을 상대로 양적완화 효과와 비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다수 위원이 '양적완화 효과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연준이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2014년 하반기 내 종료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와 관련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지난 7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강연에서 "양적완화 종료는 통화정책이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다만 양적완화 종료는 앞으로의 경제여건에 달려 있고 어떤 시점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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