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산업이 지속되는 엔저현상으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엔저현상 가속화가 예면서 수출에 빨간이 켜 것이다. 특히 일본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철강산업이 넘어야 할 파고에 기업들의 부담이 늘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은 업황 침체 장기화로 가뜩이나 위축돼 있다. 엔저현상마저 가속화되면 역풍은 매서운 칼바람으로 변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경영전략을 수정하고 환위험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이를 확실한 돌파구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철강산업, 엔저쇼크 직격탄 맞다

국내 철강산업은 엔저현상 장기화로 인한 충격이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철강사들이 엔화 약세를 등에 업고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아서다. 일본산 철강재는 중국산과 달리 국내 철강재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품질을 갖추고 있다. 일본 철강사들이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면 국내 철강사들은 가격 인하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업계 안팎에서도 '이대로라면 국내 철강사들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더구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시장이 위축되면 동남아지역의 수출비중이 큰 철강업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동남아지역 수출비중이 30%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사들이 수출경쟁력 확보를 두고 고민하는 이유다.


일본산 철강재를 수입하는 일부업체들에겐 엔저현상이 희소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철강사들은 수출 여건뿐만 아니라 내수시장까지 위협받고 있다. 일본 철강사들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일본산 철강재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높이면 국내 철강사들은 내수가격 인하 압력을 받게 된다. 국내 철강시장은 수요보다 생산이 많은 내수 공급과잉구조를 이루고 있다. 국내 철강사들이 필연적으로 더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결국 내수 수요가 크게 회복되지 않는 한 돌파구는 수출뿐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철강수급은 전년보다 소폭 개선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철강재 내수는 조선건조 수요확대 효과 미미 등으로 인해 지난해 대비 1.4%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역시 엔저 약세로 인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엔저현상이 국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 결과다.

엔저현상으로 인해 수출과 내수 모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자 국내 철강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가뜩이나 업황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엔화·달러화 동향을 주시하는가 하면 일부 철강사는 경영전략 수정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환율 움직임을 매일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엔저현상으로 인해 엔화차입에 대한 환차익이 발생할 수 있는 반면 일본시장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어 긍정적·부정적 양면을 모두 갖춘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환율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특히 환율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경영전략을 전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철강업계가 혁신적인 생산기술 및 차별화된 제품개발 등을 통해 경제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유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철강업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품질 및 서비스 개선을 통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며 "중국의 가격 공세에 대응하고 일본의 고품질 제품과 경쟁하기 위한 철강업계의 발 빠른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도 "최근 달러당 100∼105엔대인 환율 수준은 세계 경제흐름을 볼 때 새로운 균형점"이라며 "기업은 이러한 균형점에 맞춰 엔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품질경쟁력, 기술경쟁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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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기술력 앞서…영향 덜 받아

국내 조선산업은 엔화 약세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조선사들의 기술경쟁력이 일본보다 앞서 있는 데다 엔저 장기화는 오히려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어서다. 국내 조선사들은 에코십, 해양프로젝트, 방산 등 일본 조선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함에 따라 철강업계보다 엔저의 영향을 덜 받는다.

박무현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도 "엔저현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내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조선산업의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연비 등을 포함한 기술경쟁력에서는 훨씬 뒤진다"고 밝혔다. 박 애널리스트는 "일본 조선사들 역시 우리나라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라며 "엔저현상으로 국내 조선산업의 위기를 따지는 건 잘못된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재 우리가 기술경쟁력 면에서 앞서 있기 때문에 당장 수출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엔저현상에 따라 일본 조선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향후 글로벌 수주전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대형조선사들이 일본 조선사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중형조선소들은 일본과의 경쟁에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국내 중형조선사들의 경우 엔저현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이들은 엔저현상의 장기화가 주로 국내 중소형조선사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철강 수요가 많은 산업이라 엔저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일본 조선사들에게 밀릴 수 있다는 것. 주요 건조 선종인 벌크선과 탱커, 중형 컨테이너선 등을 두고 일본 조선사와 경쟁관계에 놓인 상황에 대한 의견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엔저현상으로 일본 조선사의 가격경쟁력이 부활하고 있다"며 "일반 상선과 LNG선 등에서 사업영역이 겹치는 국내 중소형조선사들은 엔저의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 관계자는 "글로벌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조선산업의 고전은 엔저현상이 이어지는 한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