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면의 원조기업 삼양식품이 최근 당시의 롯데와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이 들통나 물의를 빚고 있다. ‘중간 마진’을 챙긴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6억원을 부과받았다. 이 회사 사령탑인 전인장 회장으로선 ‘잔인한 새해’를 맞게 된 셈이다.
◆우리도 롯데처럼?…마트 납품 ‘통행세’ 들통
삼양식품의 ‘통행세’ 논란이 롯데 건에 비해 높은 수위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대형마트에 라면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거래단계 중간에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회사는 라면스프 등을 제조·판매하는 내츄럴삼양㈜. 이 회사는 전인장 회장 등 삼양식품 총수일가가 9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양식품의 지분 33.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2008년 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이마트에 라면을 공급하면서 내츄럴삼양을 거래단계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챙겨줬다. 내츄럴삼양이 삼양식품으로부터 11%의 판매수수료를 받고 이마트에는 6.2∼7.6%의 판매장려금만 지급하는 식이다.
특히 삼양은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마트에는 직접 납품을 하면서 유독 납품 규모가 가장 큰 이마트에만 내추럴 삼양을 끼워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마트에는 판매장려금을 7.9~8.5%를 지급했다.
여기에 판매장려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유통업체 브랜드(PB) 제품에도 삼양식품은 내츄럴삼양에 11%의 판매장려금을 지급하고 이를 내츄럴삼양이 챙기도록 지원했다.
지난 6년간 이같은 과정을 통해 삼양식품은 내츄럴삼양에 1612억원 규모의 거래를 몰아줬고 내츄럴삼양은 총 7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마트에 라면 납품을 시작하던 1993년 내츄럴삼양은 자산 170억원, 매출 118억원 수준이었으나 '통행세'에 힘입어 2012년에는 자산 1228억원, 매출 513억원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통행세를 적발한 공정위는 “중견그룹이 총수일가가 보유한 비상장회사를 중간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챙기게 해준 부당지원 행위를 적발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향후 삼양식품을 계속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시 부각되는 오너家의 ‘모럴 해저드’
‘갑의 횡포’ ‘일감몰아주기’ 등 가뜩이나 재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않은 상황에서 밝혀진 이번 ‘통행세’ 논란은 전인장 회장을 비롯한 삼양식품 총수 일가의 모럴 해저드를 다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삼양식품은 총수일가의 시세차익을 노린 ‘꼼수’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하얀 국물 열풍에 힘입어 '나가사끼짬뽕'이 히트를 쳤던 2011년 하반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전인장 현 회장의 아들 병우(20)군은 자신이 지분 100%를 보유한 비글스를 내세워 2011년 11월29일 삼양식품 3100주를 장내 매도했다. 그리고 그해 12월6일까지 보통주 12만4690주(1.68%)를 추가 매도하면서 해당 기간 2만6950원이던 삼양식품의 주가가 60% 가까이 급등하자 총 4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나가사끼짬뽕이 인기를 끌면서 삼양식품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점에서 지분매도가 있었다는 점인데, 특히 삼양식품의 ‘나가사끼짬뽕, 이마트 판매 1위’라는 허위 보도자료가 배포된 12월1일부터 이후 6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병우 군이 보유주식을 집중 매도했다는 점이 논란을 키웠다.
비글스를 앞세운 ‘시세차익’은 당시가 처음도 아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수혜주로 꾸준히 거론되면서 삼양식품은 2011년초 1만7000원대에 불과하던 주가가 그해 6월말 3만원까지 올랐다. 당시에도 비글스는 7월4일부터 8일까지 지분 14만3290주를 매각했다고 공시했었다. 그 기간 매물의 평균단가가 2만9437원인 것을 감안하면 약 42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누린 셈이다.
◆2위 자리 탈환도 까마득한데…
삼양식품은 위기의 2014년을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 10월 이후 오뚜기에 2위 자리를 내주면서 ‘3위의 굴욕’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벼먹는 트렌드를 겨냥해 내놓은 '불닭볶음면'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11월 라면시장 점유율을 13.1%까지 끌어올리며 13.9%인 오뚜기와 격차를 바짝 좁히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오뚜기가 1년 이상 지켜온 2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여전히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삼양식품은 때 아닌 ‘통행세’ 논란으로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오뚜기와의 전면전에서 ‘2위 탈환’의 목표가 시급해진 삼양식품. 라면의 국내 생산 1호 기업의 위상을 살릴 수 있는 2014년이 될 지 전 회장의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 지고 있다.
삼양식품의 역사적 아킬레스건
‘제2 우지파동’ 오면 어쩌지?
삼양식품의 기업역사에서 최대 아킬레스건은 ‘우지 파동’이다. 이번 통행세 사건으로 업계에서는 삼양이 '제2의 우지파동'을 겪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하며 업계를 호령하던 삼양식품은 1989년 발생한 이 사건에 휘말리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경찰은 삼양라면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우지(소고기 기름)'로 생산됐다며 회사 대표와 실무자들을 구속했고 삼양식품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시판 제품을 모두 수거해 폐기했다.
결국 삼양은 1997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통해 억울함을 벗었지만 우지파동 이전 50%를 넘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또한 매출 격감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감수했으며 1998년에는 부도 위기까지 맞았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삼양라면과 농심은 업계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우지파동 을 계기로 삼양식품은 농심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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