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 예상대로 2014년 첫번째 '관객 1000만명 돌파' 화가 됐다.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이 본 영화는 고 노대통령과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개봉 후에'평점테러', '막말댓글' 등 논란이 있었지만 웰메이드 영화답게 그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당당히 1000만객 돌파 영화열에 합류했다.

송강호, 임시완, 김영애 등 가슴 절절한 연기를 펼쳤던 배우들과 현실과 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그저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스토리,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 연출력까지…. 역대 1000만 영화가 그러하듯 영화 <변호인> 또한 가장 기본적인 영화적 장치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이념과 편 가르기는 끼어들 틈이 없다.

영화 <변호인>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여기저기서 많이 회자되고 있으므로 이쯤에서 거두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투자자 입장에서 영화 <변호인> 자체보다는 <변호인>의 투자와 배급을 담당했던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xt Entertainment World : 이하 NEW)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NEW는 쇼박스와 메가박스를 이끌었던 김우택 대표가 2008년 10월 설립한 신생 투자배급사인데, 설립 5년 만에 2013년 연간기준으로 한국영화부문에서 CJ엔터테인먼트를 누르고 당당히 1등으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NEW가 배급한 영화의 면면을 보면 <변호인>을 비롯해 <7번방의 선물>, <감시자들>, <숨바꼭질>, <신세계> 등 12편이다. 편수로는 <베를린>, <스파이>, <설국열차>, <깡철이> 등 25편의 한국영화를 배급한 CJ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성과는 NEW가 훨씬 앞섰다. 한마디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표현할 수 있다.

CJ나 롯데처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재벌기업도 아니고 극장체인을 갖고 있지도 않은 불과 업력 5년의, 그것도 영화부문 직원이라고는 20여명밖에 없는 NEW가 어떻게 골리앗 CJ를 이기고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필자는 3가지 정도로 그 배경을 추려봤다.

첫째, CJ·롯데와 같은 대기업이 외면하거나 기획하기 쉽지 않은, 도전적인 영화소재를 발굴하는 실험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은 이번이 데뷔작이다. 영화 기획은 1990년대 초부터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물을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사회적 논란이 클 수밖에 없고 이렇게 논란이 되는 시나리오를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대기업에서 채택할 리가 없다. 그러나 NEW는 달랐다. 위험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이미 <부러진 화살>이나 <피에타>처럼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던 경험도 한몫 했을 것이다.
둘째, 소규모 조직의 장점인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원들의 남다른 열정을 꼽을 수 있다. NEW의 영화사업부문 장경익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강점은 다른 회사에 비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해 조직의 위에서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자기 작품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각 부서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기업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와 업무태도다.

셋째, 장르나 소재의 구분보다는 고객과의 소통가능 여부를 투자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물론 <피에타>나 <숨바꼭질>과 같은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도 만들지만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변호인>과 <7번방의 선물>인 것을 보면 NEW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재는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세가지 배경은 모두 조직의 유연성, 열정,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NEW의 성공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요인들이 일상적인 비즈니스 세상은 물론이거니와 주식투자의 대상을 고르는 데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점이다.

직원들의 열정과 고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기업의 핵심모토로 여기는 대표적인 성공기업의 사례가 있는데, 비디오 대여업계의 거함이었던 블록버스터를 무너뜨리고 이제는 미국 방송계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한 온-오프라인 콘텐츠유통업체인 '넷플릭스'(Netflix)가 그 주인공이다.

1997년 불과 250만달러의 종잣돈으로 리드 헤이스팅즈가 창업한 넷플릭스의 고용철학은 '가장 열정 있는 직원에게 최고의 보상을'이다. 따라서 이런 열정 넘치는 넷플릭스 직원을 뜻하는 넷플릭시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또한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한 고객맞춤형 콘텐츠의 선택과 적극적 노출 전략도 성공의 한 축이 됐다.

2002년 상장 당시만 해도 1000만명에 불과했던 구독자는 이제 전세계에 걸쳐 4000만명에 이르렀으며 요즘도 매 분기마다 200만명씩 증가할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 이런 넷플릭스를 미리 알아보고 선택한 주식투자가도 대박이 나기는 마찬가지. 2012년 말 90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작년 말 한때 4배까지 급등, 370달러를 상회하기도 했다.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거나 신생 기업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투자자라면 꼭 기억하자. 투자하려는 기업의 CEO가 얼마나 유연하지, 직원은 얼마나 열정이 있는지, 그리고 그 기업이 얼마나 대중들과의 소통에 힘 쓰는지를 말이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
 
트리플플러스 이승원 대표의 주식 매매기법
싸이메라·NHN엔터가 기대되는 이유
 
조직문화가 기업의 성공여부와 얼마나 연관이 깊은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싸이월드다.

싸이월드는 전에 없던 새로운 포맷으로 소셜네트워크의 기반을 다지게 해준 창조적인 기업으로 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승승장구했지만 네이트, SK컴즈로 피인수되며 지금은 그 명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그라졌다. 시가총액 150조원에 달하는 페이스북도 싸이월드를 참조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이월드뿐만 아니라 라이코스, 이글루스 등 속칭 잘 나가던 인터넷 기업들이 SK에 피인수된 뒤 같은 길을 걸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인터넷 기업들이 대기업에서 제대로 기를 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잘된 일이라고 하기엔 아직 섣부르지만 SK가 싸이월드를 놓아준다고 한다. 싸이메라를 바탕으로 종업원 지주회사로 독립시킨다는 것.

또한 NHN엔터테인먼트는 회사를 NHN블랙픽, NHN픽셀큐브, NHN스튜디오629 등 3개 회사로 물적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성과보상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변화하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무리 게임회사라도 조직이 거대해지면 조직구조에 함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슬림화된 조직과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택한 싸이메라와 NHN엔터테인먼트의 향후 미래가 기대된다.
 

<변호인> 빅데이터 분석
 
1000만 관객의 주인공 <변호인>을 동부증권의 빅데이터 분석툴인 DOMA로 확인해봤다. 예상대로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림사건이 가장 먼저 확인된다. 2013년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에서 맹활약한 배우 송강호가 꼽힌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 CJ그룹이 보이는 것은 두가지로 해석된다. 제작, 투자, 배급, 상영까지 완벽하게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이 제작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을 수도 있고, 혹은 CJ가 작년 한국영화 배급에서 2위로 밀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NEW가 만든 <변호인> 때문이어서일 수도 있다.
 
동영상으로 보는 [이항영의 빅머니] '변호인' 편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