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연준·FRB)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인 재닛 옐런(67)이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공식 취임했다. 옐런이 취임한 날 공교롭게도 뉴욕증시는 제조업 지표 부진 등으로 인해 2% 이상 급락했다. ISM(공급관리자협회) 제조업 지표가 8개월만에 최저를 기록하면서 월가에서는 미국경제 개선과 연준의 경기 판단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또 지난달 연준이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추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한 이후 연준에 대한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테이퍼링 논란이 한창인 시기에 옐런 의장이 취임함에 따라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옐런 의장에게 당장 닥친 과제는 경기회복 기조를 해치지 않으면서 테이퍼링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또 옐런이 직면하게 될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실업률과 금리 인상시기라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옐런 의장 "여성 의장으로 부르지마"

재닛 옐런 신임 의장은 지난 3일 제15대 FRB 의장이자 첫 여성 FRB 의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날 취임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전임자인 벤 버냉키 의장의 2006년 첫 취임식이 화려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워싱턴DC 연준본부에서 열린 취임 행사에서 옐런 의장은 FRB 선임 이사인 대니얼 타룰러 이사 앞에서 선서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타룰러 이사 등 7명의 이사진과 FRB 직원, '정보 비대칭 이론'의 창시자이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옐런 의장의 남편 조지 애커로프 교수 등이 참석했다.


앞서 옐런은 연준 직원들에게 자신을 '남자의장'(chairman)이나 '여자의장'(chairwoman)이 아닌 '의장'(체어·chair)으로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70년대에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은 학생 중 여성은 옐런 혼자뿐이었으며 이에 옐런은 커리어를 시작한 초기에 '여자가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시달려야 했다고 소개했다.
 

◆옐런 취임식 날 '증시 2%대 급락'

옐런의 취임식이 조용히 치러진 반면 이날 뉴욕증시가 2% 이상 급락하는 등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과 중국의 경기둔화, 유로존 디플레이션 우려에 이어 미국의 1월 제조업 성적표가 부진하게 나타난 게 증시 급락을 부추겼다.

올해 미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낙관 일색이었고, 연준은 지난 1월29일 두번째 양적완화 축소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1월 ISM 제조업 지표는 8개월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미국경제 개선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고 뉴욕증시가 급락한 것이다.

커톤앤코의 수석 부대표인 케이스 블리스는 "12월 고용부진에 이어 1월 ISM지표 부진이 미국경제 성장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며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를 지속하면서 증시를 지지하지 않음에 따라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경제지표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옐런과 연준의 '테이퍼링 마이웨이' 순항할까

옐런은 11일 연방의회 증언을 통해 첫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테이퍼링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연준 위원들의 최근 발언 등을 볼 때 연준의 테이퍼링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강경파)인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 3일 폭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증시 하락과 신흥시장 불안에도 테이퍼링은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한 강연에서 "연준은 세계의 중앙은행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에서 연준을 세계 중앙은행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피셔 총재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지금 같은 시기에 연준은 미국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지난 5일 뉴욕 로체스터에서 가진 연설에서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연준은 실업률이 6.5%로 떨어지기 전에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준의 '테이퍼링 마이웨이'가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경기둔화와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이 미국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신흥국 시장의 위축은 미국 기업에 타격을 주고, 이는 미국 경기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월가의 우려다.

이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연준이 오는 3월 18~19일 열리는 FOMC(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연준 위원들이 '양적완화 올 하반기 종료'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옐런 의장이 취임하자마자 추가 테이퍼링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옐런의 또 다른 과제 '금리인상 시기'

옐런 의장의 또 다른 과제는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0~0.25%)인 기준금리의 인상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옐런이 직면하게 될 가장 어려운 과제가 실업률과 금리인상시기라고 보도했다. 금리인상을 너무 오래 지연시키면 물가상승률이 높아져 금융 거품을 초래할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빨리 금리를 인상하면 이제 막 회복되기 시작한 경제를 해칠 수 있어서다.

연준은 지난 2012년 12월 실업률이 6.5%로 내려가지 않는 한 현재의 제로금리 수준인 단기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미 정부는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2014년 안에 실업률이 목표치인 6.5%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6.7%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목표치에 근접한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지자 연준은 "고용시장이 여전히 취악하며 다른 지표들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당장 금리인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업률 급락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고용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농업부문 신규취업자수가 전월 대비 7만4000명 증가하는데 그쳐 3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고용부진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하락한 것은 구직활동 포기자 등 수백만명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실업률은 목표치 근처까지 하락했지만 고용이 회복되지 않음에 따라 앞으로 금리인상시기를 놓고 옐런 의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