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악플'(악성댓글)이라는 '악성코드'에 감염됐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이 비탄에 빠진 상황에서도 이 악성코드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판사의 망치에 두드려 맞고 '위헌'을 선고 받은 '인터넷 실명제'까지 해결책으로 다시 거론된다. 하지만 '악플'로 멍든 한국사회를 치료할 '백신'으로 사용하기엔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머니위크>는 세월호 참사로 다시금 불편한 존재감을 드러낸 악플의 영향력과 문제점, 그리고 그에 대항할 '진짜 백신'을 여러 각도에서 모색했다.
옛 속담에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세치밖에 안되는 혀지만 잘못 놀리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존재한다. 바로 손가락으로 난도질하는 악성댓글, 이른바 '악플'이다.

'세치 혀'는 사람의 면을 보거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뤄지지만, 악플은 일면식도 없는 상대를 온라인이라는 창구를 이용해 공간의 제약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악플러'라고 부른다. 한자 '악'(惡)과 영어 'reply'를 합친 낱말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를 붙여 만든 말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만들어낸 온라인의 악인이다.


이들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온라인 속 공간에 숨어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말들도 온라인이라는 가면을 쓴 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국민들. /사진=머니투데이DB
◆ 세월호 침몰에도 움직이는 손가락들

세월호가 검푸른 파도 속으로 잠기는 순간 대한민국도 같이 가라앉았지만 오히려 수면위로 떠오른 이들이 있다. 바로 악플러다. 이들은 국민들이 뉴스를 보며 구조상황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컴퓨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실종자 가족의 아픔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먹먹한 마음은 이들의 손가락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악플러들은 사고를 알리는 기사나 커뮤니티사이트, SNS 등에 우스갯소리를 올리는 등 손가락 난도질을 시작했다. "풉 ㅋㅋㅋ", "난리가 나면 여학생들 옷도 찢어지고 하겠지. 좋은 구경 놓쳐서 아쉽다" 등의 악플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악플은 그나마 애교 수준이다. "실종자들을 가둔 세월호는 '오뎅탕'", "실종자 가족들은 '종북세력'",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는 '폭동'", "세월호가 침몰한 날은 '물고기 회식날'", "세월호가 침몰한 전라도는 '외국'이다" 등 정상적인 사람의 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악플까지 등장했다.

한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가 세월호를 '오뎅탕'으로 비하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는 방송에서 "그 배에 탄 지들 잘못이지", "배 타러 진도 가야지" 등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해 온갖 막말을 쏟아냈다. "교복이 젖었을 것 아냐" 등 성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발언도 있었다.


한 온라인 매체(?)의 편집국장인 서모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에 항의하는 일부 실종자 가족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했다. "대통령을 무시하면 국가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선동꾼이 있다", "정부를 비난하고 선전선동을 일삼는 원천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칭 '애국보수' 네티즌들이 모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는 세월호 실종자들을 조롱하는 게시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물고기들이 포식하겠다', '보글보글 물고기밥', '교복바지 물고기밥' 등 단어 수준도 상식 이하다. 일부 이용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폭동'이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사고와 연관시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게재한 네티즌도 있었다. 사이트 내 자정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무개념 게시글 게재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진=머니투데이DB
◆ 국민 분노에 벗겨지는 저급한 민낯들
이런 악플에 네티즌과 국민들은 분노했다. 악플에 수많은 비난 댓글이 달리고, 악플을 비판하는 기사나 SNS 게시물도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누군가는 재미로 말하고, 누군가는 진실로 믿는다. 넘쳐나는 반(反)사회적, 반(反)인륜적인 '무개념' 게시글에 경찰도 칼을 빼들었다.

경찰이 악성 게시물의 게시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고 밝힌 뒤 '일베' 이용자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건의 게시판'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는 글이 잇따랐고, '고소미'(고소의 은어) 범위와 관련해 각종 문의글이 올라왔다. 그들은 실종자들을 두번 죽여 놓고 형사처벌은 무서워하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또한 지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도용한 뒤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잘 죽었음"이라고 모욕한 한 고등학생이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모친과 함께 사과문을 올리는 일도 벌어졌다. 울산소재 모 대학교사이트 게시판에, 세월호 희생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 A군과 그의 모친이 선처를 구하는 장문의 글을 올린 것이다.

이처럼 악플러들은 숨어서 손가락으로 타인을 난도질 할 때와 달리 자신의 신상이 세상에 밝혀져 책임을 추궁당할 때는 난감해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표현의 자유'만 외쳤지, 인터넷 윤리나 책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비상식·반사회·반인륜적인 주장으로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조롱하는 일에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SNS시대에 악성 댓글이 급증하는 이유를 'SNS 신드롬'으로 요약한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매사에 부정적인 심사로 뒤틀린 '네거티브'(Negative), 자기 혼자만 남이 모르는 비밀을 안다고 느끼는 '자아도취'(Self-complacence)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정보교류 창구로 쓰여야 할 SNS가 'SNS 신드롬'에 빠져 재난상황에서 사회불안을 증폭시키며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유는 곧 범죄다. 당당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면 책임도 당연하게 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뒤늦게 글을 삭제하거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심지어 잠적까지 하는 것이 남의 집 담벼락에 소변을 보고 벌금이 무서워 벽을 말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