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소재 은행 수는 120여개에 달하지만 DBS·OCBC·UOB 등 3개의 싱가포르 현지은행이 예금과 대출자산의 7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도 유럽계 및 일본계 등의 대형은행들이 상당부분 우위를 점한다.
이러한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은행 5곳의 싱가포르지점은 서로 협력하며 도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KDB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이 있다.
김종선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장 /사진=머니위크DB
◆ 개척자 산은, 협력으로 한국 시장규모 키워
산업은행이 싱가포르에 태극기를 꽂은 것은 지난 1977년. 사무소를 열면서 싱가포르에 첫 발을 디뎠다. 그로부터 30여년. 산업은행은 금융 허브 '진출'의 의미를 넘어 경쟁력을 키우는 질적 도약을 시작했다.
현재 산업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국내은행의 싱가포르지점은 역외은행(Offshore bank)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 외환은행은 한단계 위인 도매은행(Whoesale bank)이지만 싱가포르달러 표시 소매영업을 할 수 없다. 점포 수도 단 1개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국내은행의 싱가포르지점은 이곳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금융에 힘을 쏟고 있다.
기업금융부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은행의 노하우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현재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에는 한국인 직원 10명과 현지 직원 20명 등 총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규모로도 국내은행 싱가포르지점 가운데 최대다. 김종선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장은 "국내은행 싱가포르지점이 외국계 경쟁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앞장 설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의 이 같은 자신감에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안정적인 수익이 자리한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은 영업실적과 수익 다변화 차원에서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지난 2012년 기준 11억2000만달러 규모였던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의 자산은 지난해 13억2500만달러로 증가했다. 올해는 14억1800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대출자산이 지난 2012년 5억4600만달러에서 지난해 말 8억4400만달러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부실여신비율은 올 8월 현재 0.3% 수준이다.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선 덕분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사내 회계감사원(Internal Audital)을 배치해 내부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운영리스크 체크리스트 확인에서부터 자산·부채 미스매치 관리 등까지 치밀하게 살피며 리스크 관리에 나서 효과를 봤다.
이익(세전)은 지난 2012년 1021만달러에서 지난해 1426만달러로 크게 올랐다. 올해 목표는 1627만달러이지만 이미 지난 8월까지 157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초과 달성이 유력한 셈이다. 김 지점장은 "내년에는 이익 2000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이러한 결실은 오랜 기간 현지에서 내공을 다져온 결과다. 준비하는 자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되는 법. 산업은행은 IMF 외환위기 여파로 지난 1981년 설립했던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지난 99년 폐쇄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유럽발 위기가 오자 오히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유럽계 은행들이 싱가포르 금융시장에서 움츠러든 사이 국내금융사 가운데 적극적으로 블루오션 개척에 나섰던 것.
이때 빠르게 세를 불려온 일본계 은행들에도 국내금융사와의 협업구조로 맞섰다. 김 지점장은 "현재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과 신디케이트론을 같이 하며 싱가포르 내 한국시장의 규모를 키워나가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KDB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의 금융전사들. 왼쪽부터 양영진 차장, 김종선 지점장, 심재풍 부지점장, 신승우 부부장, 김정호 차장 /사진=머니위크DB
◆ 동남아 CIB센터로 베트남·태국 등 공략 강화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 직원은 매달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으로 출장을 다닌다. 고객기반 확충을 위해서는 비한국계 기업에 대한 지원확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기업에 대한 지원은 가장 기본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계 기업이 의류·피혁·가전 등의 제조업 중심에서 근래 대기업 중심의 공장 건설과 협력업체 동반진출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금융환경도 크게 변했다. 유동성이 풍부한 일본계 및 호주계 은행들이 우리 한국기업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펴면서 한국기업에 대한 애국심 호소가 빛을 잃는 실정이다.
김 지점장은 "한국 대기업에 대한 외국계의 밀착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이미 포화에 이른 시장이 더욱 실적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앞으로는 동남아 각국의 공기업과 우수기업 등 우량한 신용을 가진 곳을 대상으로 비한국계 대출자산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은 비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현지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보다 효율적인 비한국계 기업 공략을 위해 조직강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현지인을 '헤드급'으로 채용해 비한국계 전담조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허브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지점을 통해 인근 국가로 뻗어나가는 스포크(Spoke·바퀴살)의 전략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김 지점장은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의 전체 자산 중 비한국계 자산의 비중을 5년 뒤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전담하는 조직이 있다는 것도 여타 국내은행과는 차별화되는 강점이다. PF데스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2억7000만달러 규모의 금융주선에 성공했으며 올해는 8월까지 5억달러의 PF를 추진 중이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은 이와같은 비한국계 사업 확대, 동남아 PF금융 및 선박·항공기금융 강화 등을 통해 동남아CIB센터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김 지점장은 "산업은행의 역사는 프런티어의 역사"라며 "PF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 20년 만에 세계 톱10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싱가포르에서도 어렵지만 치열하게 경쟁해 인근국가로 뻗어나가는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