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대에서 본 풍경


 

‘가을 산’하면 설악이다. 산이 험해서 ‘악!’ 소리가 난다는 바로 그 ‘악산’의 대표, 설악산에 오르기로 한다. 남설악 흘림골에서 주전골, 오색약수로 이어지는 구간은 비교적 쉽다고 하지만 ‘설악산’의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고된 여정을 감내하며 오르는 이유는 가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깔딱고개로 시작하는 흘림골


설악으로 가는 길, 찻길부터 만만치 않다. 신나게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산으로 난 도로로 달리는가 싶으면 브레이크를 밟는 횟수가 잦아 지고, 차체는 크게 방향을 꺾는다. 운전이 힘들다는 한계령을 지나고 있다.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나 손잡이를 초조하게 붙잡고, 무사 도착을 기원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눈 앞에 펼쳐지는 산의 아름다움에 운전의 불편함은 오로지 운전자의 몫이 되고, 일행의 탄성은 이미 설악을 다 오른 것만큼이나 요란하다. 산 구경은 드라이브만으로도 충분하겠구나 싶다. 한계령 전망대휴게소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느긋하게 사진 한장을 찍고 가던 길을 떠나지만 산행을 계획한 여행자들은 갈 길이 바쁘다.

처음 들어서는 곳은 흘림골, 예쁜 이름이다. ‘계곡이 깊고 숲이 짙어서 항상 날씨가 흐린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흘림골 구간은 흘림골지킴터에서 등선대에 올랐다가 용소탐방지원센터까지 가는 코스다. 거리는 3.5km,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국립공원사이트에는 난이도 ‘하’라고 돼 있지만 등산가들의 말만 믿고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입구부터 경사를 오르고 기암괴석 깊은 골로 물이 흐르는 ‘여심폭포’를 지나 등선대까지 오르는 1시간가량의 코스는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가파르다.

보통 정상에 오르기 직전의 가파른 구간을 ‘깔딱고개’라고 하는데 흘림골코스는 깔딱고개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니 산에 자주 오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초입 한 시간 만에 정신이 쏙 빠질지도 모른다. 가끔 계곡에 쓰러져 있거나 거꾸로 박혀 있는 나무는 2006년 수해의 흔적이다. 그때의 수해로 흘림골은 한동안 입산 통제구역이었다. 이후 복구를 하고 재정비 하면서 나무 데크를 만들었다. 덕분에 걷기에 편해진 것이 이 정도다.

등선대는 흘림골코스의 하이라이트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등선대인데 정작 여행자는 거칠게 내뱉는 숨 때문에 승천할 지경이다. 잠시 전망대에 서서 호흡을 고르고 사방을 둘러보면 그제야 비로소 신선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등선대는 설악산 기암괴석의 중심에 있어 외설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절경이고 그림이다. 이곳에서 보는 기암괴석을 왜 ‘만물상’이라 하는지 알 것 같다.

북쪽의 서북능선, 남쪽의 점봉산, 동쪽의 동해를 전망할 수 있고 서북주능쪽으로는 칠형제봉,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이 보인다. 이로부터 약간 시야를 내리면 차로 지나왔던 한계령 길도 까마득히 보인다. 아마도 한계령휴게소에서는 이 곳을 올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늘 가까이서 보는 이 모습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등선대부터는 하산길이다. 하산길이라고 내리막만 기대한다면 등산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용소탐방지원센터까지 오는데 등선폭포, 십이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있고 한번씩 멈춰서 둘러 보면 이곳이 ‘설악’임을 말해주는 힘찬 바위 봉우리들이 산그림자를 만든다.


 

흘림골 입구
주전골

◆위조엽전 만들던 산적소굴, 주전골

주전골은 흘림골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곳은 계곡의 폭이 넓고 양쪽으로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설악의 장대함이 느껴진다. 골이 깊은 만큼 사연도 은밀하다. 이곳은 산적들이 승려로 가장하고 엽전을 만들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극에서나 보던 ‘산적의 소굴’이다. 엽전을 만들다 보니 쇳소리가 났고, 비록 나쁜 짓을 하는 소리지만 이 골짜기에 퍼지는 소리는 맑고 크게 울렸을 것이다. 결국 ‘쨍그렁 쨍그렁’ 치는 소리 때문에 관에 발각됐고 산적들은 처단되고 사찰까지 불 태워졌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용소폭포 입구의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서 ‘주전골’이라고 한다는데, 흥미진진한 산적이야기를 더 믿고 싶은 것이 호기심 많은 여행자의 마음이다.

사실 주전골코스는 흘림골에 비하면 산책 수준이다. 오색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천불동 계곡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독주암을 비롯해 고래바위, 상투바위, 새눈바위, 용소폭포, 선녀탕 등을 감상하면 된다. 물에는 울긋불긋 단풍색이 비치고, 하늘은 파랗게 가을 빛을 선사한다.

성국사쯤 오면 ‘아, 그래서 오색인가 보다!’ 하는 깨달음을 얻을지 모른다. 실제로 ‘오색’은 성국사 뜰에 다섯가지 색의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또는 주전골 계곡에 해가 비치면 바위에 다섯가지 색이 보인다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오색약수가 다섯가지 맛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나무들도 주전골 오색약수를 먹은 탓인지 이곳의 단풍이 설악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성국사
오색약수돌솥밥

◆오색약수로 밥 짓고, 산나물 찬 삼아

주전골 끝에는 오색약수가 있다. 북에는 평안도의 삼방약수가 유명하고 남에는 설악의 오색약수를 꼽는데, 약수 하나가 이렇게 유명한 곳이 또 없을 것이다. 오색약수는 조선 중기 1500년경 오색석사의 승려가 발견했다고 한다. 위장병, 신경통, 빈혈증에 효과가 있어 한 때 전국의 환자들이 줄을 서던 약수터이기도 하다.

암반에서 솟아나는 약수라 강수량에 관계없이 일정한 양의 물이 나오는데 이곳 주전골에는 두개의 약수터가 있다. 오색마을 근처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약수터는 제 1약수터에 해당하고, 이곳에 두개의 약수공이 있다. 위쪽은 여성들이 마시는 음약수, 아래는 남성들이 마시는 양약수라고 하니 성별 맞춰 맛보는 것도 오색약수를 즐기는 방법이겠다. 


맛은 조금 독특한 편으로 처음 맛보는 사람은 다소 비위에 안 맞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밥을 지으면 은은한 청자 빛을 띠며 물맛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근처에는 오색약수로 밥을 짓는 식당들이 많다.

한편 이곳 식당은 어디나 산나물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가진 산나물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들은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오색관리사무소에서 입산허가를 받고, 한포기에 여러 잎을 뜯거나 뿌리채 뽑지 않는 등 산과 식물을 소중히 여긴다.

채취한 나물으로 묵나물을 만드는데, 묵나물은 나물을 대처 말린 것을 뜻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청정 무공해 산나물이 오색약수밥과 함께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니 산행의 마무리는 오색약수밥과 산나물 반찬이면 되겠다. 설악에 오르기 위해 아침부터 서두르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총동원 하였으니 고생한 몸에 좋은 음식으로 위로를 보낸다. 내일 당장은 근육통에 시달릴지 모르지만 눈으로 기억한 멋진 풍광과 자연이 선물한 한끼 식사로 인해 여행의 좋은 추억만 오래 남을 것이다.

● 여행 정보


☞ 오색약수터 주차장 가는 법
[승용차]
올림픽대로 - 서울춘천고속도로 – 동홍천IC교차로에서 ‘속초,인제’ 방면으로 우측방향 – 설악로 – 철정터널 – 인제대교 – 인제터널 – ‘오색약수온천’ 방면으로 우회전 – 대청봉길
※흘림골 입구로 가려면 오색약수터에 주차를 하고, 택시를 이용해 올라간다. 흘림골 차로변에 주차하는 것은 불법일 뿐 아니라 상당히 위험하다.

[대중교통]
양양시외종합터미널 – 농어촌 ‘오색’ 버스 탑승 – 오색약수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오색약수터 입구: 검색어 ‘오색약수터’, ‘오색주차장’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460

< 주요 정보 >
설악산국립공원
033-636-7700 / http://seorak.knps.or.kr
입산시간지정제 운영
입산시간: (10월 말까지) 오전 3시 ~ 낮 12시 / (11월부터) 오전 4시 ~ 낮 12시
오색주차장: 033-672-5525

주전골 (남설악 오색마을 신문)
033-672-5325 / http://www.osaek.info

< 음식 >
통나무집: 오색약수 입구에 위치한 식당 중 하나다. 반찬으로 배동치미가 한포기 나오는데, 툭툭 썰어먹는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오색약수돌솥밥을 비롯해 산채비빔밥, 더덕구이, 감자부침개 등을 판매한다.
통나무집정식 15,000원 / 산채비빔밥 8,000원 / 약초토종닭 40,000원
033-671-3523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433-5

< 숙소 >
솔비치 리조트: 스페인 별장을 모티브로 오산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숙소다. 노천탕과 테라피, 아쿠아월드 등 휴식을 위한 시설을 잘 갖추고 있으며 호텔형 객실과 콘도형 리조트가 있다.
예약문의: 1588-4888
http://www.daemyungresort.com/sb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선사유적로 678

양양오토캠핑장: 바닷가 소나무 숲에 자리잡은, 4형제가 운영하는 캠핑장이다. 부지가 넉넉하고 사이트, 대여텐트, 방갈로 등 다양한 형태의 캠핑 숙소를 제공하고 여러 가지 캠핑 물품도 대여할 수 있다.
예약문의: 010-9468-0630
http://www.camping.kr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산 1-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