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장. 서문규 한국석유공사(이하 석유공사) 사장이 해외자원개발 실패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고개를 떨궜다. 지난 1979년 회사설립 때부터 장장 36년째 석유공사와 연을 맺은 서 사장. 특히 2012년 8월 제11대 석유공사 사장에 오르면서 야심찬 각오를 다졌지만 취임 2년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의 얼굴은 여전히 바닥을 향했다.

서 사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석유공사는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목적으로 탄생된 국가기업이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로서는 석유공사의 역할이 그 어떤 공기업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2014년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석유공사는 방만경영 논란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제공=한국석유공사

◆ 해외자원개발에 국민혈세 퍼주기

서 사장과 석유공사가 우울한 연말을 맞게 된 데는 해외 자원개발사업에서의 실패 영향이 가장 컸다. 특히 지난달 발표된 캐나다 정유회사 날(NARL)의 매각 건에 대해 재계의 시선은 극도로 싸늘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공사는 지난 2009년 1조20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캐나다 석유회사인 하베스트의 자회사 날을 인수해놓고 최근 미국계 상업은행인 실버레인지에 단돈 338억원에 팔기로 했다. 이는 인수금액의 3%도 채 안되는 금액. ‘헐값매각’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수과정부터가 문제였다. 석유공사는 2009년 하베스트사 지분을 100% 인수하면서 하베스트 이사회 요구에 따라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날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함께 인수했다. 매입금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12억8700 캐나다 달러(1조2446억원)를 지급한 것. 그런데도 정작 날을 매각하는 지금에서는 500만 캐나다 달러(338억원)만 받았다. 당초 9730만 캐나다 달러(940억원)였지만 부채와 각종 정산금이 제외됐다.

날은 지난 5년간 인수금액 1조2000억원이 고스란히 자산손실로 처리된 것은 물론이고 인수 후에도 시설투자에 4억3300만달러(4763억원), 운영비에 5억3000만달러(5830억원) 등 총 1조59억원의 손실을 키웠다. 실제 매입대금과 손실규모를 합하면 2조원을 웃돈다.

노후설비와 북미 석유시장 마진 악화로 날은 매년 1000억원대의 적자를 석유공사에 안겼다. 여기에 지난 2010년 1월7일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무려 70일간 정유시설을 가동하지 못했다. 지난 4년8개월 동안 총 16차례, 349일 동안 셧다운되기도 했다. 중단된 일수만 전체 가동일 중 20.5%에 해당될 정도.

날 외에도 석유공사는 영국의 석유탐사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시가보다 1조원이나 비싼 가격에 매입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 의원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2010년 9월 영국 다나(Dana)를 인수하면서 평가액보다 약 1조675억원을 더 지불했다. 주당 평균 13파운드(약 2만2300원)인 다나 주식을 18파운드에 사들여 당시 시가총액 15억9000만 파운드보다 6억2000만 파운드 비싼 22억1000만 파운드에 다나를 인수한 것.

부 의원은 “당시 유럽 경제위기 여파로 다나의 주가는 11파운드까지 떨어졌다”며 “자문사인 메릴린치가 불분명한 근거로 작성한 자문보고서만 믿고 석유공사가 투자를 진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석유공사 측은 “다나의 주당 평균 가격은 13파운드가 아닌 17.95파운드”라며 “다나를 인수한 것도 22억1000만 파운드가 아닌 약 18억9657만 파운드”라고 해명했다.

석유공사가 해외자원개발 사업과 관련해 ‘국부유출’ 논란을 겪는 데에는 지난 2008년 이후 신규로 26개 사업에 총 17조1796억원을 투자한 26개 해외자원개발 사업 중 국내로 원유가 반입된 실적이 있는 것은 영국 다나의 단 1건 뿐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이 마저도 국내 민간회사가 물량을 석유공사로부터 구입해 국내로 반입한 것으로, 실제 석유공사가 국내로 직접 원유를 반입한 실적은 없다. 이들 사업 중 실질적으로 국내 비축용으로 도입할 수 있는 광구는 영국 다나와 UAE 아부다비 광구 2건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24개 사업은 애초부터 국내 반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 회사는 부실덩어리, 직원들엔 ‘열린 곳간’

밖으로 해외사업 손실이 서 사장을 괴롭혔다면 안으로는 ‘제식구 감싸기’식 경영에 비판여론이 몰려 있다.

국회 산업통상위 이원욱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석유공사가 지난 2년간 동반성장기금을 단 한 푼도 안 냈다"며 “동반성장은 외면한 채 임직원들에게는 선물잔치를 했다”고 맹비난했다.

실제 석유공사는 지난해 투자예산을 전용해 임직원들에게 13억원 상당의 TV 등 전자제품과 10억원 상당의 디지털카메라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2012년에도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예산 잔액으로 7억원 상당의 태블릿PC를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액의 뇌물을 수수해 파면된 비리직원에 임금과 퇴직금까지 챙겨준 것도 문제가 됐다.

석유공사는 지난 2009년 카자흐스탄의 석유기업 숨베(Sumbe)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매각자측 브로커로부터 협력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A씨에게 파면 조치 이전까지 13개월간 임금과 퇴직금 등 1억6000여만원을 지급했다.

당시 석유공사 1급 직원이었던 A씨는 2009년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으로 근무 중 유전업체가 매물로 나왔다는 내부정보를 자원개발 알선업자에게 알려주고 수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석유공사는 A씨를 검찰에 수사의뢰 후 8개월이 지난 2013년 4월에서야 뒤늦게 직위해체 조치를 내렸다가 같은해 9월 파면조치하면서 퇴직금 7900만원을 지급했다.

해외사업 손실 등으로 매년 부채가 증가하는 와중에 직원들에게 지원하는 학자금 규모는 오히려 늘린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최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난 5년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19억원에 육박하는 학자금을 지원했다.

지난 2009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학자금 지원 인원은 38명이 줄었지만 금액은 2배 이상 뛰었다. 1인당 평균 지원액도 2009년 93만원에서 지난해는 264만원으로 184.9%나 급증했다. 석유공사의 부채비율이 101%에서 180%로 갑절 가까이 치솟는 사이, 1인당 학자금 지원액은 3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