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때문에 십몇년을 까먹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가 다르면 ‘안하고 말지’ 하는 마음에…. 그런데 지난해부터 조금씩 바뀌었어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죠.”
사실 그는 몇해 전 가히 신드롬을 일으킨 <나는 가수다>에도 출연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때 최고 연령자가 임재범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애들 무대에 안 간다’고 했죠. 그때 내가 노래했더라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권인하는 조금 더 일찍 자신을 깨우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더 뛰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낼모레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1959년생)임에도 ‘삶’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 1983년 들국화로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지난 2011년 강인원, 이치현, 민해경과 그룹 더 컬러스를 결성하는 등 고유한 음악 세계를 추구해왔다. 지난해에는 14년 만에 정규 6집 앨범을 냈고 올해는 여세를 몰아 가정의 달을 앞두고 2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도전한다.
/사진=임한별 기자
◆부모세대 그린 뮤지컬로 돌아오다
그에게 오랜 만에 뮤지컬 출연을 결심한 배경을 물어보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내 이미지가 도회적인데 작품명이 <꽃순이를 아시나요>라는 시골스런 느낌이라 망설였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복고적 시대 공감’이라는 작품의 매력이었다.
1970뮤지컬을 표방한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6070세대인 우리 시대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고향을 떠나 서울서 타향살이하는 젊은이들의 얘기, 청계천 봉제공장과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베트남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1970~80년대 격동의 현대사가 배경이다.
“10년쯤 앞선 세대의 이야기지만 그땐 삶이 거의 비슷했어요. 저도 서울에 대한 동경을 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상경했죠. 촌놈이라 불리면서요.”
그가 주인공을 맡은 ‘춘호’ 그리고 상대역인 첫 사랑 ‘순이’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이웃의 모습이다. 은퇴를 앞둔 세대라면 자신의 모습을, 자녀세대라면 부모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권인하는 마지막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40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청춘의 열정 대신 애잔함이 흐른다. 순이는 젊은 시절에는 식모살이와 공장일로 힘겨운 삶을 살다 중년에는 남편을 잃고 노년에 들어서는 치매까지 걸린다. 그런 순이를 향한 춘호의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라는 다짐이 눈물겹다. “여인은 치매에 걸리고 남자는 그런 그녀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 뒷바라지하죠. 그 마음과 그 상황이 짠해요.”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지난해 초연 당시 뮤지컬 배우들만으로 무대를 올렸으나 이번에는 권인하, 도원경 등 가수의 출연으로 색을 바꿨다. 이 작품에는 김국환의 ‘꽃순이를 아시나요’,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 주옥같은 명곡이 30여곡이나 등장한다.
이 작품의 이동준 연출가는 권인하에 대해 “인생도 뮤지컬도 해석이 중요한데 권인하는 해석이 탁월한 가수”라고 평했다. 실제 권인하가 연기하는 춘호는 기존 캐릭터보다 진중함을 더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당시 웬만해서는 서울로 대학 보내기가 쉽지 않았잖아요. 그 정도면 시골에서 부유하게 자란 편이고 남을 배려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노년기에 경비원을 해도 진중한 면을 가진 춘호이길 바랐죠.”
2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연기보다는 팀의 조화다. 그는 “극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다만 배우 간의 동선이 우리 나이에는 머릿속에 잘 입력이 안된다”며 웃었다.
혹시나 바쁜 스케줄 탓에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까도 걱정이다. “감기라도 걸리면 작품에 타격이 올 수 있으니까 ‘몸’이 최대 관건이다 싶어서 최근 자전거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의 말 한마디마다 나이 듦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릿함이 묻어났지만 권인하는 세월의 무게마저 껴안은 듯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자식 걱정에, 나라 걱정에 앞만 보고 달려왔던 5070세대. 그들에게 이 뮤지컬은 ‘우리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아온 것 아닌가’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중장년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오는 25일까지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공연된다.
그의 말 한마디마다 나이 듦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릿함이 묻어났지만 권인하는 세월의 무게마저 껴안은 듯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자식 걱정에, 나라 걱정에 앞만 보고 달려왔던 5070세대. 그들에게 이 뮤지컬은 ‘우리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아온 것 아닌가’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중장년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오는 25일까지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공연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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