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주택 시범지구사업이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의 반대로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범지구마다 반대의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갈등의 근간에는 대부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불통행정이 자리한다. 시범지구 선정 자체부터 ‘보금자리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해 인근 주민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된 것이 화근이다. 최근에서야 주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나서 뒷북행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범지구별 핵심 쟁점과 사업추진 현황을 짚어보니 상황은 예상대로 심각했다.


 

행복주택이 들어설 목동 유수지 전경. /사진제공=목동행복주택 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

◆목동지구, 유수지 안전성 논란에 '발목'


목동지구는 전체 7개 시범지구 중 반대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다. 유수지에 대한 안전성 논란과 교통 혼잡, 건축비용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탓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추산된 목동지구 행복주택 공사비는 3.3㎡당 1600만원 수준. 당시 위례 민간분양 공사비가 730만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사업성에 대한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양천구에선 유수지 위 시설 이전비용과 난해한 기초공사 등을 고려할 때 3.3㎡ 조성비(건축비 포함)가 3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목동지구 유수지 토양은 30m까지 갯벌과 풍화암으로 형성돼 자칫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현재 목동 유수지에는 1350면의 공영주차시설과 18면의 테니스장, 빗물펌프장, 재활용 선별장, 음식물쓰레기집하장 등 양천구 관내 중요시설이 있다. 이 시설의 대체부지 선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통문제도 골칫거리다. 지난 2년간 행복주택을 둘러싸고 주민과 국토부가 갈등을 숱하게 겪었지만 개선된 게 전혀 없다. 그런데도 목동지구의 현장 표정은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목동의 한 주민은 "믿는 구석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유일호 국토부장관이 지난 3월 송파 유수지에 행복주택을 짓는 방안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면서 국토부 내부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일호 장관 지역구 송파·잠실, 사업지 조정될까

유 장관은 현재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송파·잠실지구가 포함된 송파구(송파을) 국회의원이다. 내년 4월 총선 출마 여지를 남겨둔 터라 송파구 주민의 뜻을 거스르며 행복주택사업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현지 주민 사이에선 송파와 잠실지구가 대체 부지 선정을 조율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국토부와 송파구 등은 이에 대해 "현재까지 사업계획 변경과 관련해 단 한차례의 협의도 없었다"고 일축했다.

송파·가락지구의 반대 이유 역시 유수지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다. 주민들은 "사업지를 주민과 자치구 의견 수렴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유수지 내 행복주택 건립은 그 자체가 명백한 법령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자치구 차원에서 주민 의견을 받아들여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상황인데 국토부와의 견해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행복주택 지구지정 취소소송을 낸 목동지구나 공릉지구와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송파·잠실지구는 민·관·정이 모두 나서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보이는 목동지구와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송파구는 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 3명이 모두 새누리당으로 그동안 행복주택 건립 찬반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다.

◆주민·정부 불신 팽배… 안갯속 공릉지구

공릉지구는 시범지구 중에서도 주민과 국토부 간 불신의 골이 가장 깊다. 이는 지난해 말 국토부가 발표한 '행복주택 2년 결산, 이제는 확실히 자리 잡아'라는 보도자료 탓이 크다. 보도자료에는 "노원구·주민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공릉지구 해법을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노원구는 국토부와 합의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반박하고 나서 국토부가 역풍을 맞았다. 노원구 관계자는 "애초 정부가 주민에게 사전설명 없이 지구를 지정해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정부가 사전 합의한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에 또 한번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이곳의 쟁점은 공릉동 주민의 숙원사업인 경춘선 폐선부지의 공원화 사업의 진행이다. 앞서 국토부는 공원 대상 부지를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발표해 갈등을 자초했다. 국토부는 이곳에 100가구의 행복주택뿐만 아니라 공원과 문화시설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애초 공원화사업보다 주거환경 측면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황규돈 공릉 행복주택 건립 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2년 전 주민 반대에도 국토부는 일방적으로 시범지구 지정을 강행했다"며 "오는 23일 사업계획 승인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게 뻔하다. 공사가 시작되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산 고잔지구 변경… 가좌·오류지구 진행   

유일하게 서울 외 시범지구인 안산 고잔지구는 안산시가 제시한 '재건축주택을 활용한 행복주택사업 방식'을 지난해 말 국토부에서 받아들이면서 현재 구체적인 사업추진 방향 조율에 들어간 상태다.

국토부는 고잔역·초지역 인근 재건축지구에 대해 용적률을 완화하고 이를 통해 추가로 짓는 소형주택의 절반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인수해 행복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차장 부지에 지으려던 계획을 접고 재건축사업과 연계해 행복주택을 짓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이르면 오는 2017년부터 입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개발 계획은 '다문화 소통'이었지만 주민 반발로 '다문화'라는 단어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후에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밝혔지만 대학생 거주율이 낮아 정책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 등이 줄을 이었다.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는 지구도 있다. 행복주택 첫번째 착공지구인 가좌지구(362가구)는 지난해 5월 착공 후 오는 2016년 상반기 입주자를 모집해 2017년 말 입주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착공된 오류지구(890가구)는 내년 하반기 입주자 모집, 2018년 상반기 입주가 목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