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유괴사건이 빈번했던 1970년대.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1973년 2월 형사정책당국은 미성년자 유괴범 처벌을 대폭 강화하지만 유괴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는 1978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괴사건을 아이의 사주를 풀어 해결한다. 지난 37년간 극비리에 감춰졌던 두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가 바로 영화 <극비수사>의 출발이다.


<극비수사>에는 이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해 사건을 공개 수사로 전환하자는 서울 수사팀, 그들에게 공적을 뺏길까 부산으로 범인을 유인해 체포하자는 부산 형사팀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사이에는 오로지 아이의 생사만을 걱정했던 도사 김중산과 형사 공길용이 있다.

실제로 당시 부모의 간곡한 요청으로 아이의 생사를 점쳤던 김중산 도사는 자신이 사주를 보고 뽑은 경찰만이 아이를 살릴 수 있으며, 그 인물이 바로 공길용 형사라고 확신했다. 김중산 도사는 “다른 무속인들은 아이의 사주를 보고 다 죽었다고 그랬거든. 사주가 세니까. 하지만 나는 반대로 세니까 살아난다. 세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고 단언하며 공길용 형사의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

그간의 수사 경험, 그리고 아이의 생사를 확신한 김중산 도사를 믿고 뚝심있는 수사를 펼쳤던 공길용 형사는 수사 과정에서 느꼈던 당시 심정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범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33일 동안 그 하루하루를 넘기는데 옆에서 안보면 절대 모른다. 32일을 그 집에서 자면서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정을…. 수사관을 하면서, 경찰을 하면서 이 애를 찾을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인터뷰를 통해 전해진 공길용 형사의 진심은 <극비수사>의 드라마 곳곳에 녹아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시놉시스
한 아이가 유괴된 후 수사가 시작되고 아이 부모의 특별 요청으로 담당이 된 공길용 형사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극비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가족들은 유명한 점술집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생사여부를 확인하지만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답만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도사 김중산을 찾아간다. 아이의 사주를 풀어보던 김도사는 아직 아이가 살아있고 보름째 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첫 연락이 온다고 풀이한다. 보름째 되는 날, 김도사의 말대로 연락이 오고 범인이 보낸 단서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공형사는 김도사의 말을 믿게 된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수사는 진전되지 않고 모두가 아이의 생사보다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된 상황 속에 공형사와 김도사, 두 사람만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수사를 지속하는데….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