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국민연금공단)에 살던 고래(기금운용본부)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고래가 가는 곳은 넓고 푸른 바다가 될 수도, 어둡고 암담한 바다가 될 수도 있다. 본래 바다는 고래의 생존에 무심하다. 고래 스스로 바다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국민연금공단 내부부서인 기금운용본부가 따로 분리될 전망이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이 낸 국민연금 보험료를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해 돈을 굴리는 부서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로 떼어내려는 이유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투자관련 정책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독립을 앞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기금운용본부가 독립 이후 국민의 돈을 모은 소중한 기금을 잘 굴릴 수 있을지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최종 개편안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기금을 둘러싼 쟁점을 짚어본다.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찬성, “수익률 끌어올려 기금 고갈 막는다”
정부가 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을 효율적으로 굴리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국민연금기금 운용체제 개편안을 만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지난 7월21일 ‘국민연금기금 관리·운용체계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민연금 개선안을 발표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가 주요 골자다.


국민연금공단은 복지부 산하에 있다. 그 밑에는 기금운용본부가 있는데 약 200여명이 500조원을 굴린다. 한사람당 2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거대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 같은 지적에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따로 떼어내 공사화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500조원을 웃도는 거대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투자 활성화 등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도록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보사연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성·독립성 강화’와 ‘기금운용공사 독립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민연금기금이 국외 대체투자를 늘려 전략적으로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행 기금관리·운용체계는 기금운용위가 주요 투자정책을 결정하고 기금운용본부가 실무집행을 맡는다.


보사연은 “기금운용 수익률을 연평균 1%포인트 높이면 보험료율을 2.5%포인트 인상하는 것과 비슷한 재정안정 효과가 있다”며 “수익률을 끌어올려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려면 해외투자를 전략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중심으로 대폭 개편하고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떼어내 별도로 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

개선안에 따르면 가입자대표 중심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된다. 국민연금심의위원회는 국민연금정책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연금재정을 책임지는 기구로 격상된다. 현재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민간출신 위원장을 필두로 8명의 민간위원, 당연직 공무원 2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된다. 가입자대표 및 전문가 등 20인으로 구성된 현재의 조직구성이 크게 바뀌는 모양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기금운용본부에 대해 공단과의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여 기금고갈을 막으려면 이 같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DI는 ‘국민연금 재정목표와 기금운용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 보고서를 통해 “적극적 투자를 해야 하는 기금 축적단계에서조차 채권비중이 60%에 달하는 등 소극적·추종적 투자행태를 보여왔다”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시켜 민간금융전문가 위주로 재편,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용성과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기금운용계획 발의와 의결이 모두 복지부 장관 책임 아래 이뤄지다 보니 기금운용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지고 투자포트폴리오도 소극적으로 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위해 국민연금의 재정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 기금운용의 역할 범위와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KDI는 “국민연금 재정목표를 ‘향후 적립률 몇% 이상 유지’ 등으로 분명하게 제시하도록 국민연금법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되면 기금운용 주체의 재량은 넓게 허용하되 한도를 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무와 책임을 명시해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기금운용의 역할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 “수익률 집착하다 기금 안정성 해칠 수도”
예상되는 폐해도 만만찮다. 기금운용본부가 별도의 공사로 구성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져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기금본부 신설을 통한 기금운용의 독립성 강화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표했다.

이찬진 위원장은 “시장수익률을 무시한 과도한 목표수익률 추구는 위험하다”며 “수익률에 집착하다 터무니없는 투자로 손실을 초래한다면 그 피해규모는 연금의 장기 재정안정이 위협받을 정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연금기금이 수익률이라는 논리에 함몰돼 과도한 리스크를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별도의 기금운용공사가 높은 수익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30년간 미국 금융시장의 뮤추얼펀드를 조사해보니 1%포인트 초과수익을 20~30년간 꾸준히 달성할 확률은 0.6~0.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앞으로 40년간 연평균 1%포인트 이상 초과수익을 달성할 이론적 확률은 5.7%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수익률을 높이려면 추가위험 부담이 불가피한 만큼 국민연금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감수할지 반드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운용손실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1%포인트 초과수익 추구 시 변동성은 약 3배, 손실확률은 약 200배 이상 위험이 증가한다”며 “실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위험자산에 많이 투자한 세계 주요 연기금의 손실은 20% 안팎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껏 우수한 성적을 냈던 펀드매니저들도 3년 이상 초과수익을 낸 적이 없다”며 “수익을 낸다는 목표는 위험도 함께 지겠다는 뜻인데 그만큼 안전장치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정부는 기금투자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쏟아내고 있다”고 일갈했다. 기금운용조직을 투자전문기관으로 독립시킨다는 개편방향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다.

전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앞으로 기금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국민연금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