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진 못했지만 이 재앙은 16만㎡의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선 직후 발생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이 사건을 법원으로 넘겼고 지난 2005년 법원은 “코카콜라가 물 부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뇌리엔 ‘코카콜라=자연을 파괴한 나쁜 기업’이란 이미지가 자리잡았다.
이에 카를로스 살라자르 코카콜라 최고경영자는 환경과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코카콜라를 운영하는 데 제일 중요한 건 물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환경과학자들은 “자연에 투자하라”고 조언했고 코카콜라는 이후 자사가 사용하는 물을 자연과 공동체에 돌려주겠다는 ‘재충전’ 캠페인을 맹세했다. 그 결과 현재 코카콜라는 세계에서 물과 자연에 투자를 가장 잘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도 코카콜라에게 물은 매우 비싸고 가지기 힘든 존재다. 실제로 올해 코카콜라는 인도 남부지역에 8100만달러를 투자해 보틀링공장을 세우려 했으나 물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한 현지인의 반대로 공장 설립이 무산됐다. 지난 1999년에 있었던 사건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축복 중 하나인 ‘물’. 그동안 인류는 지구로부터 물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 물은 평등한 축복이 아니다. 코카콜라처럼 막대한 돈을 지불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이 됐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물… 점점 귀해진다
물 부족 현상이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국제사회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지난해 물발자국에 대한 국제표준(ISO 14046)을 제정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현재 미국과 호주, 스페인 등 일부 국가들은 물발자국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고 기업이 생산해내는 제품의 물발자국 정보를 요구해 인증 또는 등급을 매기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또 물 사용량이 과한 기업에 대해서는 물 사용량을 규제한다.
우리 정부 역시 이 생소한 개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발자국 산정방법을 국가표준(KS)으로 제정하고 고시키로 한 것. 그러나 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다.
지난 6월 1974년 댐 준공 이후 역대 최저 수위로 발전 중단 위기에 몰렸던 소양강댐. /사진=뉴시스 한윤식 기자
유럽연합(EU)도 유사제도를 2020년까지 도입하기 위해 맥주와 커피, 고기와 같은 식음료뿐 아니라 배터리를 비롯한 IT장비를 대상으로도 물발자국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미국과 호주, 스페인 등에 이어 EU까지 물발자국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전세계 금융기관의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물 정보공개 프로젝트’(CDP Water)도 실시된다. CDP Water란 영국에 본부를 둔 환경관련 글로벌 비영리단체로 전세계 금융기관(573개 금융기관)의 위임을 받아 세계 주요 상장기업에 물과 관련한 정보공개를 요청, 이를 분석하고 매년 보고서로 발간해 금융기관의 투자와 대출 등에 활용토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총 7곳(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LG화학, 현대중공업)이 CDP Water로부터 정보공개를 요청받기도 했다. 물론 물 정보공개나 사용이력 등을 이유로 아직은 특별한 제재 움직임이 없지만 앞으로 CDP Water가 금융기관의 투자를 결정짓는 중요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 2050년 ‘물 스트레스’ 1위… 대응은 전무
이처럼 점점 물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기업들도 물 사용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CDP Water Global 500’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인 물 위험이 지금 또는 다음 5년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 기업이 65%에 달했고, 53%의 기업은 물로 인해 이미 손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미국의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사는 미 환경보호국(EPA)의 새로운 물 규정이 31개나 되는 석탄화력발전소에 영향을 미쳐 10억달러의 손실이 예측된다고 밝혔다. 물의 위험과 엄중한 허가조건 때문에 캐나다의 ‘바릭 골드’(Barrick Gold)사는 85억달러에 달하는 칠레의 ‘파스쿠아 라마’(Pascua Lama) 광산 건설을 연기했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곳은 우리나라다. 지난 2012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50년에 OECD 소속 국가 중 ‘물 스트레스지수’ 1위가 될 전망이다.
물 스트레스지수란 물의 총수요량을 1년간 쓸 수 있는 물 가용량으로 나눈 수치로, 이 수치가 40%를 넘을 경우 ‘심각한 스트레스’(severe stress)로 분류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에 속한 국가 중 유일하게 물 스트레스지수가 40%를 넘는 국가로 기록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수자원 총량은 연간 1297억㎡, 가용 수자원량은 753㎡다. 이 중 32%인 420㎡는 바다로 유실되고 333억㎡ 정도를 하천수, 댐용수, 지하수로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수자원 총량 가운데 26%만 이용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구조의 변화, 좁은 국토에 비해 높은 인구 밀도 등이 물 스트레스를 높이는 주원인이다.
이 같은 상황에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물시장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여기서 말하는 물시장이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다.
물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누구한테 물 사용권을 사야 하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단지 정부가 정해준 상하수도 요금을 지불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허점이 있어 물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될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올해 초 지방자치단체의 엉성한 행정처리로 인해 한 기업이 36년간 맥주를 만들면서 사용한 물의 사용료를 전혀 내지 않은 사건도 발생했다. 사용료가 청구되지 않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은 물 사용료를 떼먹은 나쁜 기업으로 오해받아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전문가들은 두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물발자국 관련 표준지표를 만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의 물 사용 정보공개 및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의 임원은 “물 사용에 대한 법제화가 시급하다”며 “정책이나 규제가 있어야 거기에 맞춰 기업이 움직이고 물 사용량을 조절할 텐데 현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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