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적폐와 잘못된 규제 등을 혁파하겠다." 지난해 11월 검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함승희씨가 강원랜드의 8대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조직폭력배 소탕을 주도한 검사의 실제 모델. 서울지검 특수부 시절 1년 동안 280여명을 구속해 ‘저승사자’로 불리던 그가 카지노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취임 직후 그의 행보는 앞선 7명의 사령탑과는 확실히 달랐다.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자체 감찰을 통해 밝혀진 비리혐의자 14명 가운데 죄질이 나쁘거나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힌 전·현직 임직원 6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강원랜드의 실적 또한 탄탄했다. 특히 올 들어 메르스 사태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입장객이 늘어 2분기 카지노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4%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20%나 늘었다. 골프, 콘도 등 비카지노 매출액 역시 같은 기간과 비교해 6.7% 상승했다.

그러나 취임 1년을 맞은 함 대표의 경영성적표에 선뜻 'A'가 표기될 지는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교적 짧은 기간임을 감안해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의 크고 작은 마찰, 방만경영 논란 등의 악재를 여전히 끊지 못했다. 함 대표의 지난 1년이 '가시밭길'인 이유다. 


◆ 오투리조트 150억 기부의 불편한 진실

잊을 만하면  제기되는 강원랜드의 방만경영 논란이 최근 다시 불거졌다. 지난 2012년 이뤄진 오투리조트에 대한 150억원 기부 행적을 놓고서다. 

지난 2008년 12월 태백시가 4300억원을 들여 개장한 콘도와 스키장, 골프장, 컨벤션센터 등을 갖춘 오투리조트. 수년간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 리조트는 지난 2012년 7월 강원랜드 이사회가 기부금 형태로 150억원을 지원했다.  당시 이사진 12명 가운데 7명이 찬성, 2명은 기권, 3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이후 감사원은 지난해 3월 강원랜드를 상대로 감사를 벌여 찬성·기권표를 던진 이사 9명이 오투리조트의 극심한 경영난을 알고도 자금 지원안에 찬성하거나 명확한 반대를 표시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원의 요청을 수용한 강원랜드는 지난해 9월 해당이사 9명을 상대로 150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경제개혁연대도 이사들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7월 손해배상소송 1심 재판부는 이들 이사 9명에 대해 “강원랜드 이사로서 부당한 기부행위를 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총 3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당시 강원랜드 이사회는 오투리조트의 회생을 위해 전환사채를 매입했다가 손실을 입은 전례가 있었는데도 지원의 성격을 '기부'로 변경하면서까지 150억원을 지원하는 꼼수를 부렸다"며 "이 사건은 공공기관 방만경영의 원인이 되는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 계약직 무더기 해고, 억대연봉 임원은 증원

인사문제와 관련해서도 '함승희 호'의 항해는 순탄치 못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월17일 강원랜드는 직원들의 퇴근시간에 무려 152명의 계약직에 대한 해고를 예보했다. 정부가 강원랜드의 올해 정원을 210명으로 결정하면서 계약직원의 무더기 해고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 

지역주민들은 폐광지 회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강원랜드가 설립 취지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해고통보를 받은 직원 대부분이 태백과 정선 등 폐광지역 출신으로 지난 2013년부터 강원랜드 카지노 증설에 따라 충원된 인원들인 탓에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다행히 사태발발 한달여 뒤인 지난 3월 중순 기획재정부가 강원랜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고 강원랜드가 이를 따르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계약직 직원들의 무더기 해고 사태를 야기한 강원랜드가 정작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의 정원은 오히려 늘린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민들은 또 다시 공분했다. 

지난 1월 22일 강원랜드는 공석인 집행임원 가운데 카지노본부장에 홍종설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IT실장에 백혜경 KT상무 등 5명에 대한 선임을 확정했다. 공석이던 나머지 집행임원 3명에 대해서도 계약직 사원 해고를 예보했던 2월17일 마케팅실장과 안전관리실장 등을 추가로 선임했다. 이들의 연봉은 상무급이 1억5000만원, 본부장급은 1억8000만원이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강원랜드가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등한시 하면서 집행임원 늘리기에는 혈안이 됐다"며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은 늘리고 폐광지역 청년들은 해고하는 강원랜드가 폐광지역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강원랜드 본사 사옥. /사진=뉴시스=홍춘봉 기자

◆ 뿔난 진폐환자들, 물먹은 워터파크 
이처럼 함 대표의 지난 1년은 지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드러낸다. 

지난 3월 벌어진 지역내 진폐환자들의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진폐재해자협회와 광산진폐권익연대 등 강원 태백·정선지역 진폐단체는 "강원랜드가 지하막장에서 무연탄을 생산하다 불치의 직업병에 걸린 진폐 환자들에 대해 생색내기 지원에 그치고 있다"며 대규모 궐기대회를 계획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산업화시대 국내 유일 에너지자원인 무연탄을 채굴하다 진폐증에 걸렸지만 상당수 진폐 환자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강원랜드는 일부 진폐 환자에게 연간 15만원의 난방비를 지원하는 데 그치는 등 복지지원에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워터파크 건설을 놓고도 강원랜드는 지역민과 갈등 상태다. 강원랜드가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초의 워터파크 건설 계획을 대폭 수정했기 때문이다. 

강원 정선 지역민들로 구성된 고한·사북·남면·신동 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는 지난 8월24일 '강원랜드 미래비전 수립 워터월드 원안추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민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워터파크사업은 강원랜드 1단계 사업을 마무리 짓는 가족형 복합리조트의 핵심시설"이라며 "그러나 사업면적이 당초보다 대폭 축소된 B급 워터파크 시설과 개장시기 불투명성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강원랜드는 워터파크 설계변경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기만하거나 우롱했다”며 “워터파크 사업의 파행사태를 일으킨 근본원인은 바로 지역과의 무소통, 무원칙, 무능력한 강원랜드 대표 및 이하 경영진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