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의 부실책임은 이사장한테 있습니다. 금융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새마을금고를 운영하다 보니 금융사고가 계속 늘어나는 겁니다. 실체를 들여다보면 사실 더 심각합니다.”
지난 1월 초. A지역 새마을금고 임원 B씨로부터 새마을금고 관련 제보를 받았다. 그는 새마을금고가 고객의 신뢰를 받기 위해선 이사장들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60~70대 고령층이 많은 데다 상당수가 금융경험이 없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제도보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금융사고가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새마을금고도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아래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B씨의 말은 사실일까. 그의 제보를 토대로 새마을금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재임기간 42년, 이사장이 직업
42년. 서울지역에 소재한 C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재임기간이다. 반세기에 달하는 기간 동안 이사장을 역임한 경우는 금융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간 이사장직을 역임하면 오히려 새마을금고를 운영하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새마을금고는 지금까지 금융권에서 금융사고가 가장 자주 발생한 금융사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우선 이사장들의 임기현황을 살펴보면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전국적으로 1352명(2015년 6월30일 기준)인데 이 중 12년 이상 재임한 이사장이 358명에 이른다(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2015년 국정감사자료 참조). 이들은 이사장이 직업인 셈. 문제는 이들 중 금융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데 있다.
B씨는 “새마을금고 이사장 가운데 90%가량이 금융과 무관한 업무를 하다 이사장이 된 것”이라며 “금융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새마을금고를 운영하다 보니 직원 횡령과 불법대출이 계속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안전행정부가 201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체 새마을금고에서 금융경력이 있는 이사장을 둔 곳은 20%도 채 안됐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줄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금융사고도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진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금융사고는 2012년 62건, 2013년 574건, 2014년 1071건 등으로 해마다 두배 이상 늘었고 불법대출 역시 2012년 127건, 2013년 162건, 2014년 198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부실률도 상승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행정자치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새마을금고 총대출액이 68조997억원인데 연체율은 2.33%(연체액 1조5903억원)에 달한다. 시중은행에 비해 6배가량 높은 수치다.
새마을금고가 부실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불법대출과 횡령이 발생해도 해당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가벼운 징계만 받고 다시 현직에 복귀하기 일쑤다. 진 의원이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새마을금고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사고가 일어난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71%가 재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불법대출이 발생한 새마을금고의 경우 연대책임이 있는 이사장 10명 중 9명이 재선임됐다.
◆부실금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처럼 이사장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허술한 감독체계와 연관이 있다. 금융권에선 수십억원대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가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다. 하지만 새마을금고에선 불법행위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끼쳤더라도 법적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아니면 현직을 유지할 수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규정상 보궐선거 출마를 금지할 근거가 없어서다.
단위 새마을금고가 모두 독립법인체제여서 자체적으로 이사장을 선출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새마을금고에 따르면 회원총회를 거쳐 이사장을 선출하는 곳은 전체 이사장 중 20%도 채 안된다. 대부분 대의원총회를 거쳐 간선제로 선출하는 구조다. 150여명의 대의원 관리만 잘하면 누구나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사장 선거철마다 이사장과 대의원 간 금품수수 및 불법선거 논란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고를 관리감독하는 이사와 감사도 이사장이 측근으로 구성할 수 있다. 대의원은 이사장뿐만 아니라 이사와 감사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선출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유권자가 후보 중 한명에게 투표하는 방식과 이사회 정원 수만큼 투표(정수투표)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새마을금고는 정수투표를 선택했다. 따라서 이사장이 대의원을 설득하면 이사와 감사까지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이사장은 대부분 지역 유지가 많은데 돈이 많고 인맥이 화려한 사람들은 이사장과 이사, 감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며 “연간 수천억원의 고객돈을 운용하는 이들이지만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사장의 70~80%가 60~70대의 고령층”이라며 “전문성도 없고 판단력도 흐린 인물이 이사장으로 있다보니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횡령할 수 있는 구조다. 관리감독기능을 강화해 이사장을 물갈이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새마을금고는 행정자치부 소속 비금융전문가 10명이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구조다. 게다가 감독의 기초자료인 업무보고서를 제출할 의무조차 없다. 정확한 부실위험을 파악하기 어려워 언론의 감시기능에서도 한발 떨어져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서민금융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새마을금고를 제2금융권으로 인식, 금융감독당국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서둘러 관련 제도를 도입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새마을금고중앙회측은 "새마을금고는 지역협동조합이다보니 주민의 뜻에 의해 운영된다"면서 "현재로선 이사장에 대해 연령 등 자격을 제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