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정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국회의원이 전무한 가운데 올 들어 정치권으로 발을 넓히는 인물이 속속 등장한 것. 금융업계는 금융권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이들이 새로운 소통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종인 만큼 금융전문가가 은행법과 정책 등을 운용·개정하는 것이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최근 저금리 기조와 금융당국의 규제강화로 금융산업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업계 이해도가 높은 금융전문가가 국회에 입성한다면 금융법 개정과 금융규제 이슈 등이 터질 때 금융사 입장에서 대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한다.
◆정무위 소속 금융전문가 ‘0명’
<머니위크>가 24명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프로필을 조사한 결과 금융권 CEO 출신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과 카드, 저축은행 입장에선 금융법 개정이슈가 터질 때마다 금융권 입장을 대변할 의원이 없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기본적으로 정무위원회는 국회 소관부처를 맡는다. 은행과 카드, 저축은행 등 금융권 국정감사도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진행한다.
조사결과 은행 출신은 김기준 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사에서 현업에 종사한 것이 아닌 노동조합위원장 출신이다. 김 의원은 외환은행 노조위원장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을 역임했다. 은행과 노조 등 노사가 대립할 경우 오히려 사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 출신에 가까운 인물은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과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등 2명에 불과하다. 박 의원은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금융당국과 예보 수장을 맡은 만큼 금융이해도가 다른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셈.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부 관료 출신이다. 금융사 편에 서서 입장을 대변할 만큼 친밀도가 높지 않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들이 가진 금융지식이 국감 이슈가 터질 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다른 의원보다 금융을 잘 알기 때문에 국감에서 금융사 CEO와 임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진형 입당, 하춘수·최홍 출사표
그러나 최근 금융사 CEO 등 다양한 금융권 출신 인사들이 정치계 입문을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그는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주 사장 모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그의 임기는 오는 3월로 두달가량 남았다. 따라서 주 사장의 더불어민주당 합류가 확정되면 한화투자증권 CEO가 조기교체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측은 주 사장에 대해 “정치적 식견을 높이 사고 존경한다”고 밝혀 그의 입당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정책과 경제민주화대책을 수립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주 사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재탄생을 위해 검토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며 “말로는 중산층과 서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연관관계가 부실하다”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일각에선 그의 정계진출을 불안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는 2013년 9월 한화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직원의 21%를 내보내 ‘구조조정의 달인’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또 매도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매매수수료에 기반을 둔 성과급을 폐지하는 등 파격적인 경영을 선보여 ‘증권업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나아가 지난해 9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일가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에 반대하다가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주 사장은 세계은행·삼성생명·AT커니 이사, 삼성증권 전략기획실장, 우리금융지주 전략기획 담당 상무와 전무를 역임한 정통 금융맨이다.
하춘수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4.13 총선에 출마한다. 그는 지역에서의 인지도를 살려 대구 북구갑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하 예비후보는 대구은행 행원으로 입사,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 예비후보는 “박근혜정부의 성공과 지역경제 및 정치발전에 기여하고자 출마를 결심했다”며 “대구에서 44년간 경험을 쌓은 지역 출신의 실물경제전문가로서 대구 경제발전의 작은 밀알이 되겠다”고 밝혔다. DGB금융지주는 물론 금융권에서도 그의 총선 출마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최홍 전 ING자산운용 대표(새누리당)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50세이던 2011년 몸짱 선발대회에서 젊은 참가자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기도 한 최 예비후보는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랜드마크자산운용 등 금융계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갑에 출마할 예정인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눈에 띈다. 부산 남구는 한국거래소 본사가 소재한 곳이다. 이밖에 KB국민카드 부사장 출신 이현희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청주 흥덕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그는 신용카드수수료 인상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해 카드업계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출마설이 나오는 인물도 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그 주인공.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코드인사’라는 논란을 딛고 성과를 보여주며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행장은 2013년 12월 기업은행장으로 취임하며 ‘최초 여성 은행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취임 이후 2년 연속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기운 센’ 캐릭터를 앞세운 홍보로 개인고객층도 확대했다. 여기에 정부의 금융정책인 핀테크와 기술금융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권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며 “금융사 입장에 맞는 정책을 펴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