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 사업자의 곪은 상처가 또 터졌다. 재송신료(CPS)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주문형 비디오(VOD)로 확대된 것. 실시간방송 CPS 계약을 맺지 않은 개별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게는 VOD를 공급할 수 없다는 지상파 측의 주장을 케이블업계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양측은 출구 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다.

지상파는 ‘VOD 공급대가 정산방식 변경’, ‘CPS를 내지 않는 지역 케이블 사업자에 대한 VOD 공급 중단’ 등의 요구를 케이블업계가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달 일부터 씨앤앰을 제외한 케이블에 VOD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케이블업계가 ‘지상파 방송광고 송출 중단’ 카드로 반격에 나서며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지난달 15일 정부의 극적인 중재로 지상파는 VOD 공급을 재개하고, 케이블은 광고 송출 중단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급한 불은 꺼졌다. 

지난달 1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지상파 VOD 중단 대응을 위한 SO협의회 비상총회'에서 SO대표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예고된 케이블 VOD 블랙아
하지만 이번 조치는 한시적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은 VOD·CPS 관련 협의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지만 양측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지난달 28일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월 말까지 협의가 안 되면 2월 중순까지 협상을 연장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때까지도 협의에 실패하면 ‘케이블 VOD 블랙아웃’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협상기간이 끝나 가는데 아직까지 진척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협상 결렬 후 지상파가 다시 VOD 공급 중단을 결정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국으로 치닫는 지상파-케이블 갈등의 핵심은 CPS 적정가를 둘러싼 견해차다. 2008년부터 지상파와 SO들은 CPS 가격을 두고 수십건의 소송을 벌일 정도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결국 IPTV는 2008년부터, 씨앤앰, 티브로드 등 주요 케이블은 2012년부터 지상파에 가입자당 280원을 CPS로 지급했다. 하지만 지상파는 이 가격으로는 부족하다며 지난해부터 케이블 측에 CPS 가격을 430원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케이블업계는 ▲지상파의 난시청 해소 ▲보편적 방송서비스 실현 ▲지상파의 수신 확장 등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280원도 과한 금액이라며 공동으로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케이블업계 3위 사업자 씨앤앰이 최근 지상파 3사와 새로운 CPS 금액에 합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상파가 그간 제시한 요구 조건에서 거의 물러서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상파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짙다. 케이블업계가 씨앤앰의 독단적 행동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씨앤앰의 행보에 대해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매각을 앞두고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케이블업계 한 관계자는 “씨앤앰이 매각을 앞두고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지상파와 적극적으로 협상한 것 같다”며 “앞선 사례를 감안하면 씨앤앰의 협상가는 다른 케이블업체들과 지상파 간 재송신료 관련 소송, VOD 재계약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지상파와 케이블 TV 간 VOD 공급 분쟁을 조정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분쟁조정위원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끊임없는 줄다리기에 ‘시청권’ 흔들
현행 방송법에는 케이블의 지상파 방송 재송신에 대한 규정이 없다. CPS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대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달 13일 지상파 3사가 10개 개별 SO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SO들이 지상파에 가입자당 190원씩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의 결정까지 나왔지만 양측은 아전인수식 판결문 해석으로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수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은 “서울중앙지법의 선고는 결론적으로 지상파가 가입자당 280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직권으로 190원을 선고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지상파가 CPS를 280원에서 430원까지 올릴 것을 요구했음을 고려한다면 이번 판결은 향후 CPS 협상 체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지상파의 CPS 지급 요구가 적법한 권리행사임을 재판부가 확인해 준 것”이라며 “손해배상 금액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개별SO가 사업규모와 디지털 전환율, 매출액 등에서 차이가 있어 양자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재판부가 밝혔는데, SO협의회가 MSO의 CPS를 190원으로 정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판결문을 오독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왜곡한 것으로 항소심에서 다시 다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로도, 법적으로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자 케이블업계는 지난달 초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에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상파는 사업자간 해결해야 할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방통위와 미래부가 CPS ‘협상 원칙’을 정한다는 기조 아래 설립한 ‘재송신협의체’는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다. 결국 지상파-케이블 간 끊임없는 힘겨루기에 애꿎은 시청자의 ‘시청권’만 흔들리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재송신협의체에서 지상파-케이블 협상 절차와 CPS 대가 산정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만들었다”며 “사업자들이 알아서 협의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