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늦은 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늙고 병든 개 한마리가 주인을 잃고 우리 집에 머물렀다. 전단을 붙이고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결국 우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붙여준 이름은 ‘메리’. 하지만 5개월 전 메리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메리를 만난 지 2년 만에 다시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았다. 지난달 26일 오후 3시, 경기도 양주시 변두리의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정문 앞. 메리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기동물보호소다.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앵무새, 햄스터, 기니피그 등 약 300마리의 유기동물이 이곳에 머문다. 하루 20~30마리의 주인 잃은 동물이 보호소 가족이 된다. 협회는 동물들이 스트레스받을 것을 염려해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유기견들. /사진=뉴시스 이정선 기자
/사진=머니위크DB

◆유기동물 한마리당 하루 관리비 1만5000원

협회 직원인 이은영씨는 “여름에는 유기동물 수가 900마리까지 증가하는데 휴가철에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호소로 오는 동물들은 대개 주인을 찾지 못한다. 평균 10마리 중 3마리만 주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나머지 동물들에게 보호소가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소에 유기동물 한마리당 약 9만원의 사료비와 관리인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실제로 관리에 드는 비용은 하루 평균 1만5000원이다.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은 15~20일 보호한 후 안락사시키도록 돼 있다. 따라서 보호기간이 연장될수록 보호소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나 동물 수에 한계가 생긴다.

협회 다른 직원은 “국민이 낸 세금만으로 지원받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동물보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최근에는 변화가 생겨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리비용에는 최소한의 식비와 인건비가 포함되는데 유기동물들은 다치거나 아픈 경우가 많아 치료비용이 든다”며 “후원을 받아 이 문제를 일부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또 “유기동물 수에 비해 관리인 수가 부족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며 “직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니 채용이 쉽지 않고 자원봉사자의 도움 없이는 보호소 운영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이지만 유기동물이 새 주인을 만나면 보호소 직원들은 보람을 느낀다. 또 사회문제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입양은 또 다른 유기동물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성급하게 입양했다가 실제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재유기하거나 판매업자가 돈을 받고 분양하려는 목적으로 위장 입양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상황은 농장주 손에 넘겨지는 일이다. 일부 악성 농장주들은 유기견을 데려다가 강제교배 후 새끼를 낳게 하고 병들면 다시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보호소에서는 유기동물 입양인이 직접 비용을 들여 중성화수술을 시키도록 한다. 동물보호 선진국인 유럽에서는 정부가 유기동물 입양을 권장하고 적극적으로 중성화수술을 시행해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


경기도 양주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정문. /사진= 김노향 기자

◆“안락사는 수의사에게 가장 힘든 시간”
이튿날인 27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후암로의 남산동물병원을 찾았다. 이곳은 용산구청이 지정한 유기동물보호소 중 하나다. 개 6마리와 고양이 1마리가 주인을 잃었거나 주인에게 버림받았다. 이 동물들은 철창 안에 갇혀 불안한 눈빛을 보이고 크게 짖거나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주성일 남산동물병원장은 “가장 힘든 일이 이들을 안락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나마 함께 지낸 동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몸에 주삿바늘을 꽂으면 약간의 움직임조차 없이 눈을 스르르 감는다. 고통은 없겠지만 생을 끝낸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동물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유기동물보호소가 최후의 상황까지 안락사를 미룬다.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해도 보호소에 남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주성일 원장은 “수의사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정심이 커 많은 비용을 감당하더라도 안락사만큼은 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법적으론 안되는 일이지만 당국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정한다.

이에 정부는 동물 유기 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법적 규제를 시도 중이다. 그중 하나로 2013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반려동물 몸속에 인식 칩을 내장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방문하면 주사 한번으로 이식이 가능하고 일부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인식 칩을 내장한 반려동물의 목이나 등 부근에 기기를 갖다 대면 주인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나온다.

그러나 이마저 시스템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시행 초기인 만큼 동물마다 인식 칩 내장 여부를 확인하고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소한 전산상 실수로 정보가 삭제되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인식 칩의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기기가 단돈 몇만원에 판매된다. 잃어버릴까봐 불안한 마음에 인식 칩을 시술해준 손으로 다시 정보를 삭제하고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이다.

기자가 키웠던 메리에게도 인식 칩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았을 때 수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식 칩을 심어줬을 정도면 애지중지 키운 강아진데 정보가 지워졌네요. 일부러 지운 것 같아요.”



◆동물 유기, 세금 부담으로
유기동물은 개인 문제가 아니다. 쉽게 입양하고 쉽게 유기하는 풍토는 도시미관이나 공중위생을 저해할 뿐 아니라 천문학적 세금을 쏟아붓는 상황을 만들었다. 반려동물과 관련 없는 국민들도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는 셈이다.

이정림 용산구청 보건소 주무관은 “반려동물 소유주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며 “목줄 착용이나 배설물 처리를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생명을 존중하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유기동물에 관한 신고를 받으면 현장에 출동한 후 동물을 동물보호센터로 이송시킨다. 이후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공고하고 보호한다. 여기에 등록된 유기동물은 주인을 찾지 못하면 입양되거나 기증된다. 지난 한해 용산구에 접수된 유기동물 신고 건수는 489건. 2012년 1049건을 기록했다가 2013년 동물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메리가 죽은 후 처음으로 무덤을 찾았다. 메리는 1년 반의 짧은 시간 동안 가족의 삶에 많은 변화와 영감을 줬다. 메리가 사실은 버림받은 게 아니라 이전 주인을 잃은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니면 적어도 버려진 사실을 몰랐기를….

서울 남산동물병원에 보호 중인 유기견들. /사진=김노향 기자
 “유기동물 발견하면 꼭 지켜주세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을 잘 알 것이다. 반려동물을 잃어버렸을 때 근처에 전단을 붙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분실정보를 게재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그중 가장 기본으로 할 일이 바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분실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한다. 유기동물을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해 지자체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업무를 수행한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은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사람과 주인을 찾아주고자 하는 사람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최근 등록한 유기동물의 정보를 볼 수 있다. 또 잃어버린 반려동물의 외모나 분실장소, 분실시간을 제공해 제보를 받을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은 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등록되지 않은 유기동물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관계자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동물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며 “길가에서 유기동물로 보이는 동물을 발견했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해주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