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열정페이보단 경험이 중요하다고 위로하는 기성세대에게 청년들은 되묻는다. “아픈 게 우리 잘못인가요? 게을러서, 열정이 부족해서인가요?”

저성장으로 인한 기업의 비전 부재, 실업, 저출산, 고령화…. 지금 대한민국이 짊어진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많은 부분이 청년과 연결된다. 그럼에도 청년의 고민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공감은 부족한 상황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14시간 일한 스크린도어 수리공의 죽음을 우리는 너무 빨리 잊는다. 왜 ‘흙수저’란 말이 생겨났나. 헬(Hell)조선, N포세대(희망을 포기함)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자조하는 청년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2016년 8월 제호를 바꾸고 새롭게 도약하는 <머니S>가 ‘대한민국 청년보고서’를 기획했다.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이 느끼는 무게를 공감하고 정부와 기업의 청년정책을 다양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목소리를 담았다. <머니S>는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와 공동으로 ‘2030세대, 한국사회에 고하다’를 주제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달 4일부터 2주일 동안 진행된 설문에는 학생(140명·11%), 구직자(479명·37%), 직장인(594명·46%), 기타(68명·5%) 등 1303명이 참여했다.



◆‘현실의 벽’ 부딪힌 청년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기업의 채용이 공정하고 투명했으면 합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안정적인 직장만 찾다 보니 많은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요.”
“사무직만 인정하는 사회분위기가 아니라 기술직 종사자도 대우받고 싶습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편견을 버리고 봐주세요.”

설문 결과 구직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443명(36%)이 ‘취업문턱 자체가 높다’를 꼽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32%), ‘불합리한 채용과정’(12%), ‘준비비용 등 금전적인 문제’(11%)라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청년들이 취업문턱을 높게 느끼는 것은 단순히 경제불황이나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15~29세 실업률은 2006년 7.9%에서 지난해 9.2%로 높아졌고 고용률은 43.4%에서 41.5%로 낮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제조업종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33조6657억원에서 52조5630억원으로 56% 증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949만명. 이중 경제활동인구는 434만명이고 취업자 수는 394만명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45.7%로 절반에 못 미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회구조적 문제 앞에서 개개인의 능력을 탓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번 설문 결과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취업에 실패했을 때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32%가 ‘스펙(학력·학점·영어 등)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고용시장 불안문제’(27%)와 ‘잘못된 고용정책’(21%)을 지적한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다.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사람도 9%나 됐다. 이는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금수저·흙수저’ 문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 중인 김은비씨(가명)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음에도 여전히 이력서에 부모님 학력과 직업을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기업이 많다”며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고위직이나 대기업 임원의 자녀가 특혜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평범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구직자는 “지금도 많은 청년이 취업에 적합한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 불필요한 필기시험과 면접횟수를 줄이고 대학시절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청춘
어렵게 취업의 문턱을 넘어도 청년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이 졸업 후 첫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평균 11.2개월이 걸렸으나 1년 가까운 도전 끝에 취업에 성공하고도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 직장에서의 근속기간은 평균 1년6개월에 그쳤다. 첫 직장을 1년 미만의 계약직으로 입사하는 비중도 2010년 이후 5년 사이 두배 넘게 늘었다.

비정규직의 슬픔을 그린 웹툰 <미생>에는 ‘세상이 불공평해서 실패한 게 아니다. 내가 열심히 안해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인턴·수습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이나마 안정된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청춘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희망고문처럼 들린다.

실제 이번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취업에 성공한 후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직장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급여와 처우’라는 답변이 33%로 가장 많았고 ‘상사나 동료와의 원만한 관계유지’(27%), ‘직장 내 의사결정의 권한이나 성취감 부재’(23%), ‘업무지식의 부족’(14%) 등이 뒤를 이었다.

중점적으로 개선돼야 할 청년정책은 ‘낮은 임금과 소득 불평등’(42%), ‘개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비교’(23%), ‘기업이익에 치중한 정책’(22%), ‘사회약자에 대한 복지부족’(8%) 순으로 나타났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기업 운영에서 노동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합리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지 오래”라며 “근로자 대부분이 사내에 의무적으로 비치해 놓은 취업규칙의 내용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심지어 상사에게 취업규칙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가 해고통지를 받은 사례도 있다.

설문 참여자들은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조적 차별을 줄이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기업이익에 집중하는 정책을 지양하며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설문 참여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별이 줄어들면 무조건 큰 회사가 아니라 적성과 비전을 보고 지원할 수 있다”며 “정부정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골고루 나눠주고 복지에 힘써달라”고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오늘날의 기업 운영은 임금체불과 수당 없는 야근,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열정페이가 넘쳐난다”며 “이러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노동의 보람과 성취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개혁은 고용의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젊은이들 눈이 높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적정한 임금을 주는 것이 개혁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설문의 다른 참여자는 “입시교육이 아닌 인성과 창의성교육, 사회에서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가지 희망적인 점은 이러한 현실에도 많은 입사지원자가 개인의 성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사지원 시 가장 고려하는 사항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7%가 ‘개인과 기업의 성장가능성’이라고 답했다. ‘연봉’은 그 뒤를 이어 29%를 차지했다. ‘업무내용’과 ‘기업 이미지’는 각각 24%, 5%였다.



◆정책보다 관습·인식의 변화 필요해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대체로 어둡게 전망했다. 설문 참여자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놓고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308명·27%)거나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270명·24%)라고 답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미래에 대한 불안의 이유로는 ‘경제적 문제(직장근속·대출상환 등)’가 56%를 차지해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노후대비’(24%), ‘부모부양’(5%)이 고민이라는 답변도 29%로 사실상 경제적 문제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건강이 불안하다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노후대비를 위한 재테크수단으로는 예금·적금(47%), 주식·펀드(14%), 부동산투자(8%) 순인 가운데 아예 재테크를 안한다는 답변도 28%나 됐다. 저금리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예금이자가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75%가 재테크를 포기한 셈이다.

청년정책의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에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은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춘들이 기성세대와 제도권에 얼마나 실망하고 기대를 버렸는지를 보여줬다. ‘인권만이라도 존중해주세요’, ‘노력도 안하면서 묻지 마세요’, ‘제발 우리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힘들어요’, ‘그냥 떠날게요’ 등이다.

많은 청춘들이 취업과 경쟁에 절망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올해 4·13 총선에서 청년층의 투표율이 4년 전 19대 총선보다 10%포인트 올라간 것. 투표율은 20대가 11%포인트, 30대가 5%포인트 높아졌다.

청년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공약에 대한 합리적 평가자로서 힘을 발휘한다면 정책과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청년이 정책 참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라며 “앞으로 일자리와 교육, 육아 등 청년층의 민생현안을 놓고 정치권이 고민하는 선의의 경쟁구도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