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발전 ‘스톱’, 방만경영 고리 끊고 지주사 전환 등 과제 풀어야


한국거래소가 계속된 낙하산 투입에 멍들고 있다. 내부승진자가 아닌 경제관료나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사가 수년째 거래소의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는 것. 그러는 사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거래소의 포부는 무색해졌고 자본시장의 발전도 멈춰 섰다. 일각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다시 거래소를 방만경영의 늪에 빠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각계각층에서 낙하산 인사를 겨냥한 맹비난이 쏟아지지만 거래소는 요지부동이다.


KRX정찬우신임이사장. /사진제공=한국거래서

◆정치권·금융관료의 꽃보직 ‘이사장’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30일 오후 여의도 사옥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가 단독 추천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제5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정 이사장은 전남대 교수와 금융연구원 부원장, 2013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9월까지 3년간이다.

85.29%라는 높은 찬성표를 받고 자본시장의 핵심기관장 자리에 오른 정 이사장이지만 선임 과정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정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출신으로 정부의 금융정책 구성에 힘을 보탠 친박계 인물로 알려져 ‘낙하산’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실제 정 이사장은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고 산업은행장, 기업은행장 하마평에 올랐다.


사실상 주주총회도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의 지분은 36개의 증권·선물사·증권유관기관이 각각 0.4~5.83% 보유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에 따르면 거래소는 주총에 앞서 주주들의 찬성 위임장을 50% 이상 확보했다. 또 주총이 있던 날 증권사 사장들은 해외일정으로 인해 주총에 참가할 수 없었다.

한달이 채 안된 이사장 선임 기간도 낙하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전임인 최경수 전 이사장이 2013년 10월 선임될 때는 이사장 모집공고부터 주주총회까지 4개월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지난 8월 말까지 거래소가 이사장을 선임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최 전 이사장이 연임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달 2일 후추위가 구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이사장의 내정설이 돌면서 최 전 이사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그런 최 전 이사장도 취임할 때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역시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옛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중부지방국세청장, 조달청장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다. 최 전 이사장의 내정설은 당시 후추위가 5명의 지원자 면접을 보기도 전에 흘러나왔다. 이에 면접과 주총은 요식행위일 뿐 사실상 청와대가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한국거래소 임원의 낙하산 논란은 관례처럼 계속된 일이다. 제3대 이사장인 김봉수 전 이사장이 재임했던 당시 한국거래소의 임원변동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임명된 총 15인의 한국거래소 임원 중 13명이 내부승진자가 아닌 정부부처나 외부기관에서 영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한국거래소노동조합,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주최로 금융위원회 정찬우 전 부위원장의 한국거래소 이사장 임명 반대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최진석 기자

◆낙하산 넘고 거래소 발전 이끌까
한국거래소가 낙하산 투하지역으로 인기를 끄는 배경은 역시 높은 연봉이다. 거래소는 과거 시장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방만경영이 드러나자 2009년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됐다. 당시 거래소 이사장 연봉은 기본급과 성과급 등을 포함해 8억원에 육박했다. 이후 방만경영 해소 차원에서 임원연봉을 내렸고 2014년 기준 이사장의 연봉도 1억8114만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해제되자마자 2014년에는 없었던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면서 다시 이사장의 연봉은 2억5656만원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증가한 영업수익은 증시 활황으로 거래량이 늘면서 발생한 수수료수익이 대부분이었다. 2014년 매출 중 수수료수익 비중은 78.2%였지만 지난해 81.6%로 늘어났다. 경영을 잘했다기보다 단지 시장 흐름이 좋았던 덕분에 앉아서 돈을 번 셈이다.

따라서 한국거래소의 낙하산 이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정찬우 이사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논평을 통해 “거래소의 낙하산 인사가 절대 허용돼선 안된다”며 “선임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다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도 낙하산 인사 저지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거래소 노조는 정 이사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또 임시 주총에서 거래소 임원들과 대치하며 낙하산 인사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지난 4일에는 거래소 부산 본사에서 예정된 이사장 취임식도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동기 거래소 노조위원장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투쟁을 통해 이사장 해임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정 이사장은 꿈쩍 않고 버텼다. 이제 남은 건 정 이사장의 행보다. 낙하산이라는 불명예를 벗으려면 거래소의 당면과제를 성사시키고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 일단 최우선 사항은 정치권 알력다툼에 밀린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과 기업공개(IPO)다. 또 수년째 침체된 파생상품시장을 살리고 신규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

정 이사장은 지난 5일 취임식에서 “관련 법령이 정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조직 개편과 지주회사 전환이 마무리되면 최대한 신속히 상장을 추진하겠다”며 “해외기업들이 상장하고 싶은 거래소, 해외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은 거래소를 만들기 위해 코스피와 코스닥, 파생상품 등 각 시장별 특성에 맞게 제도 개선, 투자상품 확대 등 맞춤형 전략을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