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는 가성비 소비로 촉발된 최근의 구매트렌드다. 1인 가구와 싱글족의 급증으로 소비패턴이 ‘나’에게 맞춰지며 가치에 중점을 둔 소비가 늘고 있는 것. 소비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으면 고가제품이라도 과감히 구매하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갑을 닫는다. 차라리 저가상품을 구매해 그 값만큼의 품질을 기대하고 소비한다. 상대적으로 중가제품의 소비는 위축된다. ‘소비의 양극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의 마케팅 전략도 둘로 나뉘었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를 공략하거나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고급화를 지향하는 소비자를 공략하는 전략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오픈마켓을 비롯한 인터넷 매장들은 마일리지·경품·가격할인 등 기존의 마케팅수단을 최대한 활용해 가성비를 높이는 한편 가치소비족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비중도 확대하는 추세다.


LG전자의 프리미엄 TV '커브드OLED'. /사진=뉴스1 DB

◆‘가치’가 있다면 ‘고가’라도 괜찮아

# 직장인 정모씨(34·남)는 업무 특성상 노트북을 쓸 일이 많다. 사용하던 노트북이 수명을 다하자 새 제품을 구매하기로 한 정씨는 A사의 200만원대 고가 노트북을 사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업무적으로 사용할 일이 많아 보급형 제품보다는 최신 기능을 갖춘 노트북 구매를 결정했다”며 “다소 비싸더라도 내게 지금 필요한 제품이어서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TV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다양한 가전제품이 즐비한 대형가전매장에서는 제품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제품이 수십만원을 호가하고 심지어 수천만원대 상품도 판매된다.

가전매장 관계자는 “TV의 경우 워낙 고가군으로 분류되지만 제일 매출이 높은 상품군이기도 하다”며 “대체로 거실에 비치하는 TV는 그 집의 경제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소비자는 보다 크고 프리미엄화 된 TV를 거실에 걸고 싶어한다. 이 같은 심리가 작용하며 수천만원대 TV도 잘 팔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도 수백만원을 호가하지만 기능과 품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에게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장 관계자는 “노트북이나 카메라, 냉장고 등은 보통 소비자가 일생에 1~2번 정도 구매하는 제품”이라며 “이왕 사는 거 비싸고 좋은 제품을 사려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성분문제가 대두되며 천연성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소비자는 한두푼 아끼는 것보다 안전한 제품을 고가에 구매하더라도 마음놓고 쓸 수 있길 원한다. 대량생산된 소비품보다 수제품에 희소성을 부여하는 것도 가치소비의 한 형태다. 나를 위한 ‘가치’에는 충분히 높은 비용을 지불할 각오가 돼 있는 것이다.

(왼쪽부터)SPA 대표브랜드 유니클로, 잠실롯데백화점 명품관. /사진=김정훈 기자

◆‘가치’가 있다면 ‘발품’도 판다

# 주부 박모씨(40)는 최근 ‘떠리몰’에서 유통기한이 3개월 정도 남은 식자재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시중보다 80~90% 싸게 식재료를 구입한 박씨는 “제품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제품에 큰 문제가 없다면 굳이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일명 ‘B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B급상품이란 약간의 스크래치가 생긴 가구나 가전제품,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 이월된 재고상품 등을 말한다. 이는 경기불황 속 더 저렴한 가격으로 실용적인 소비를 원하는 열풍과 맞물려 각광받는다.

박씨가 자주 이용한다는 떠리몰은 ‘임박몰’ ‘이유몰’ 등과 함께 B급상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온라인쇼핑몰이다. 이곳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최대 90%까지 저렴하게 판매한다. 싸지만 품질도 보증됐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음료제품은 기한을 알아볼 수 있도록 확대 표기한다. 또 철저한 세균검사를 실시, B급이지만 A급을 추구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가치소비족들은 보다 저렴한 이월상품을 구입하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대형가전 할인매장은 백화점이 세일할 때면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추가세일을 하거나 사은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또 직영점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가맹점은 재고를 떠안지 않기 위해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을 자주 진행한다. 

B급상품 구매 고수들은 가맹점에서 물건을 살 때 낮보다 밤, 문 닫기 직전을 선호한다. 가맹점들이 당일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추가로 할인할 가능성이 많아서다. 

이와 함께 흠집·색상 등 미세한 문제로 반품된 제품이나 고객의 단순변심으로 포장을 뜯은 제품, 전시상품 등을 판매하는 ‘리퍼브숍’도 주목받는다. 대형마트 코스트코에서는 아예 반품된 상품을 20~70% 저렴하게 재판매하는 반품숍을 운영 중이다. 

유통업체의 PB(Private Brand)상품도 인기다. 업체가 자체적으로 우유제품을 개발하면서 시작된 PB는 이제 일상생활용품의 모든 분야로 범위가 확대됐다. 최근엔 대형유통업체 외에 편의점 PB상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돌아오는 과제는 ‘소비양극화’

가치소비에 따른 소비의 양극화를 마냥 반기기는 어렵다. 고가와 저가상품이 잘 팔리는 반면 중가브랜드는 상대적으로 고전할 수 있어서다.

잠실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A캐주얼브랜드 관계자는 “보통 10월에는 겨울용 점퍼 판매가 시작되는데 소비자가 고가브랜드의 패딩점퍼를 찾거나 SPA브랜드의 저가패딩을 구입하는 경향이 심화돼 판매율이 신통찮다”고 말했다.

소비의 양극화 때문에 내수 불균형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치소비 개념이 확산되면서 시장이 고가제품과 저가제품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어정쩡한 가격대의 브랜드들은 가격을 아예 올리는 마케팅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커 중가제품 수요층이 ‘붕’ 뜨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