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하는 마을은 극강의 개성을 자랑한다. 지하 85m까지 파고 내려간 지하도시, 돌산을 파서 만든 수도원, 100m 이상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계곡에 사람들이 살았다.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희한한 풍경 속으로 떠나보자.
데린쿠유 침입자를 막는 장치.
데린쿠유.
◆데린쿠유 지하도시
사람이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고 살 수 있을까. 데린쿠유(Derinkuyu)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지하도시가 40여개, 그 중 발굴된 지하도시는 6개 정도인데 데린쿠유는 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화산 때문이었을까. 지하도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4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기원전 700년 전에 지하도시의 모습이 대략 갖춰졌다. BC 8~7세기 원시 히타이트 민족이 만들고 로마시대, 비잔틴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다른 민족들이 살았던 거대 지하도시. 그것이 데린쿠유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쿠유의 깊이는 약 85m로 추정된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현재는 지하 8층까지만 개방된다. 개방된 구간이 40m 정도로, 계속 발굴할 경우 지하 18층까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도시 발견설도 여러가지다. 양을 찾으러 갔다가, 닭이 구멍에 빠져서, 집수리를 하다가…. 어쨌든 조그만 구멍이 지하 세계로 향하는 통로였으니,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세계로 통하는 문’의 실사판이다.
이곳은 고대 도시다운 실용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교회, 학교, 공동부엌, 회의장, 마구간, 포도주압착기 등 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다 있다. 이 동굴에 ‘데린쿠유’라는 이름이 붙게 해준 깊은 우물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악취는 치즈를 덮어서 줄였다는 것도 재미있다. 법을 어긴 죄수나 격리가 필요한 사람을 가두어 놓은 흔적도 있고 죽은 사람을 매장한 공간도 있다.
지상까지 직선으로 뚫려있는 구멍은 환기구로 길이가 40m나 된다. 위로 갈수록 구멍이 작아져 지상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동굴 발견설 중 닭이 이 구멍으로 빠졌다는 얘기가 맞다면 순식간에 지하동굴 40m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닭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행이란 것을 하고, 이내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동굴은 은신처로서의 기능에 철저했다. 부엌의 연기는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서서히 분산시켜 배출했다.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는 입구를 막을 수 있도록 주요 길목마다 돌문이 설치됐다. 동그란 바퀴처럼 생긴 문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막대기 같은 것을 끼워 돌을 굴리고, 또 구멍을 통해 화살을 쏘거나 창을 넣어 침입자를 찔렀다고 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지하동굴이 끝없이 이어진다. 비밀 터널과 탈출로도 있다.
기독교인들이 숨어들어온 곳이니 예배당도 있다. 교회는 십자가 모양으로 교회 안의 기둥은 죄 지은 사람을 묶어두고 벌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긴 이 좁고 답답한 곳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개개인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건 기본이고 규율도 꽤나 엄격해야 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300년간 숨어 지낼 수 있었다. 한창 때 지하도시 인구는 2만~3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셀리메 수도원.
◆셀리메 수도원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ery)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동굴집이다. 카파도키아에 하루만 머물러도 동굴집은 놀랍지 않지만 이곳은 완성도와 규모면에서 단연 최고다. 앞에 서면 이전에 구경했던 동굴집들을 잊고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동로마시절 기독교 박해를 피해 찾아온 신자와 성직자가 살았던 곳이다. 각 공간이 번듯하게 잘 설계돼 전쟁 시엔 성으로 사용되고 실크로드를 이용하던 상인들도 묵고 갔다.
이곳의 방들은 서로 연결됐다. 옆이나 뒤에 통로가 있어 이웃한 방을 찾아갈 때 굳이 바깥으로 나와 동굴의 입구를 찾지 않아도 된다. 개미집 같기도 하고 지상에 올라온 지하도시 같기도 하다. 수도원이니 당연히 예배당이 있는데 굴을 파고 그 안에 2층짜리 교회를 만든 것이 놀랍다. 층을 가르는 아치 창도 그리스·로마의 양식이 나타나는 틀이 잡힌 것들이다.
이곳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길도 미끄럽다. 울타리나 안전장치가 없어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낙상을 입는다. 실제로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 예전에는 6층까지 개방했지만 낙상사가 있은 후로 3층까지만 개방한다. 3층까지만 올라가도 전망이 장관이다. 실내로 들어가서 바깥을 보면 자연스럽게 뚫린 동굴의 입구가 있고, 그 앞으로 펼쳐진 자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니까 동굴집 사람들은 저마다 커다란 액자 하나씩을 가졌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하늘과 자연을 보고 살았으니 지하도시 사람들보다는 더 밝고 낙천적이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으흘랄라 계곡.
◆으흘랄라 계곡
으흘랄라 계곡은 초록이 있는 곳이다. 카파도키아는 붉은 바위와 기이한 버섯 집들로 우주의 어느 행성 같은 비현실적 도시인데 이곳은 나무도 있고 풀도 있어서 대략 ‘지구’ 같다. 다만 100~200m에 이르는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 같다. 이런 협곡이 16km가량 이어지는데 완만한 능선 같은 건 없다. 신이 도미노 게임을 하다가 조각을 몇 개 남겨 놓은 것 같다.
이곳 역시 기독교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주변에는 5000호의 주택과 105곳의 교회 흔적이 남아있다. 트레킹 출발 지점에 있는 아가칼티교회 벽면에는 그리스도 승천 장면이 그려져 있다.
트레킹은 멜렌디즈 하천을 따라 걷는다. 오랜만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오리, 닭, 양, 말, 소 등 여러 가축들도 만난다. 물과 나무, 풀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생명력 덕분에 동굴 집에서 바짝 건조해진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지는 것 같다. 이따금 지진으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가 길을 막아서는 것이 섬뜩하지만 대체로 콧노래가 나오는 산책길이다.
이 계곡에서도 사람들은 동굴에 살았다고 한다. 절벽에 있는 구멍들이 바로 그 흔적이다. 아래쪽 큰 구멍에는 사람이 살았고, 위쪽 작은 구멍들은 비둘기 집이다. 당시 비둘기는 우리가 아는 도시의 비둘기와는 달랐다. 고기는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됐고, 비둘기 똥은 프레스코화의 회벽을 만드는 데 쓰여 지금까지도 선명한 색상을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비둘기 똥은 비료와 연료, 무기를 만드는 데도 사용됐고, 비둘기 알의 흰자는 벽화를 코팅하는 데 쓰였다 하니 당시엔 비둘기가 소이자 닭, 돼지였던 셈이다. 지금은 그저 비둘기일 뿐이지만 여전히 비둘기 집에는 많은 비둘기가 모여 산다. 카파도키아 곳곳에서 떼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아가칼티 교회.
[여행 정보]
한국에서 터키 카파도키아(괴레메) 가는 법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 인천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괴레메(카파도키아 여행의 중심이 되는 마을)
로컬항공: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세리로 이동 (터키항공, 페가수스항공 등) – 카이세리에서 METRO 버스로 괴레메까지 이동
버스: 이스탄불 오토갈(otogar. 버스터미널)에서 메트로, 네브쉐히르 등 버스를 이용하여 괴레메까지 이동 (소요시간 11시간. 보통 야간버스를 이용한다.)
환율: 1리라 = 약 342.7원
메트로 버스: http://www.metroturizm.com.tr
네브쉐히르 버스: http://www.nevsehirlilerseyahat.com.tr
데린쿠유
Bayramlı, 50700 Derinkuyu
384-381-31-94
입장료: 20리라
셀리메 수도원
Güzelyurt, 68500 Güzelyurt
입장료: 20리라
으흘랄라 계곡
Ihlara, 68570 Ihlara/Güzelyurt
그린투어
그린투어는 터키에서 초록을 볼 수 있는 으흘랄라 계곡을 포함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에서 가까운 셀리메 수도원과 지하도시 데린쿠유를 포함하며 여행사에 따라 일정은 조금씩 다르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여행사나 숙소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한국어 가이드를 제공하는 여행사도 있다. 그린투어 외에도 레드투어, 짚 투어, 벌룬 투어, 로즈 투어 등 다양한 방식의 여행상품이 있다.
음식
탑 덱(Top Deck): 괴레메에서 손에 꼽히는 동굴식당이다. 반드시 예약이 필요하며 터키 로컬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한식으로 치면 반찬에 해당하는 메제 세트와 양고기 요리가 인기 메뉴다.
벨리시르마(Belisirma): 으흘랄라 계곡 출구 쪽에 있으며 투어 참여자가 많이 이용한다.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이 많은 만큼 메뉴는 단순하고, 푸짐한 편이다.
숙박
슈스트링 케이브 하우스(Shoestring Cave House): 괴레메에 있는 동굴 숙소다. 도미토리, 디럭스룸, 패밀리룸 등 다양한 객실과 옥상에 수영장이 있다. 가장 ‘동굴’다운 객실은 도미토리룸이다.
http://www.shoestringca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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