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다가오고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파트 후분양제 의무화’가 정치권 일각의 공약으로 떠올랐다.

국내 아파트 분양은 대부분 건설사가 분양대금을 먼저 받고 2~3년 후 준공하는 ‘선분양제’ 방식으로 진행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자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고 분양자 역시 아파트 구입자금을 2~3년 동안 나눠 부담해도 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미분양이나 할인분양으로 인한 주민갈등, 품질저하와 하자보상 등 문제점도 있어 그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동탄2신도시. /사진=머니투데이 DB

◆미입주·할인분양·하자… 불량 아파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아파트 건설공정이 80%에 도달한 이후 건설사가 입주민을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최근 ‘후분양제 도입의 장단점과 시장영향에 대한 분석’을 연구용역으로 발주했다.


아파트 후분양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후분양제는 참여정부 때도 도입이 추진되다가 무산된 바 있다. 중견·중소건설사의 경우 분양대금을 받지 않으면 공사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 소비자도 비용부담이 커진다는 현실성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단지아파트의 미분양이나 할인분양, 하자보상 문제 등이 잇따르며 선분양제의 단점이 더 부각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5만6413호에 달한다. 대단지아파트에서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주변 학교나 편의시설 등 인프라가 들어서기 어렵고 할인분양으로 인한 입주민 갈등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또한 선분양제는 분양자가 아파트를 실물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 계약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추후 하자나 애프터서비스 부실에 따른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 경기도 동탄신도시에서는 한 브랜드아파트가 준공시기를 못맞춰 분양자들이 입주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지난해 건설분야 분쟁조정 신청은 42건으로 1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했다. 이 중 하자담보 책임분쟁은 12건(28.6%)을 차지했다.


후분양제 찬성론자들은 건설공정이 80% 이상에 이르면 소비자가 아파트 외관이나 마감재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하자나 민원이 줄어들 것이라 주장한다. 윤영일 의원은 “선분양제는 의도적인 부실시공이나 품질저하, 건설사의 부도위험 등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부담으로 분양가 상승, 진실일까

현행법상 건설사는 선분양제나 후분양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선분양제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공기관만이 후분양제를 시행 중이다. 수요자들도 아파트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나 분양권 전매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등 선분양제로 인한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후분양제에 반발하는 입장에서는 분양가 인상을 반대논리로 내세운다. 현재 국내 주택의 60% 이상은 중견·중소건설사가 담당하는데 자금난이 우려되기도 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자가 자체자금이나 금융회사에서 건설비를 조달하면 그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선분양시스템이 주택투기를 부추기고 아파트가격의 변동성을 키웠다는 점이다. 국토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보고서는 선분양제가 건설사의 금융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사업자의 자본이득만 늘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건설사가 미분양 시 할인분양을 대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선분양 자체가 구조적으로 주택가격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후분양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가장 비싼 물건을 보지도 못하고 사는 건 시장논리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선분양제·후분양제 적절한 조화가 대안

미국·영국·호주 등은 사업자가 선분양과 후분양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국내에서는 신규주택 공급의 80~90%를 재개발·재건축 도시정비사업에 의존하는 만큼 서울 등 대도시의 후분양제는 자칫 공급난을 야기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사업주체인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로서는 자체적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상황이나 사업성격에 맞춰 사업자가 선분양과 후분양 중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소비자의 권리나 품질관리 등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후분양제를 의무화하는 데 대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분양제는 주택이 부족했던 시절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지금은 공급이 100%를 넘어선 만큼 후분양제로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건설사 사정이 열악하고 한번에 의무화하는 것이 시장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반시공 후 분양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