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4번이나 유산하는 와중에 딸아이가 훌쩍 커버렸어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서적으로 부모의 지지가 필요한 시기인데 외로움을 느꼈는지 2~3년 사이 의기소침해졌죠. 우리 부부는 중요한 때를 놓친 거죠. 집사람과 아이 둘 다 저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뭔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합계출산율 1.17명. 고령화와 초저출산현상이 국가적 문제이자 정부 과제로 떠오른 지금, 근로현장의 수많은 부모들은 어떤 육아정책을 바라고 있을까.


이건구 대우건설 천안레이크타운푸르지오현장 과장(안전관리자·42)은 지난해 초 돌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주변에서 육아휴직한 선배나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뿐더러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을 두고 집안일 하러 간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건구 대우건설 과장. /사진제공=이건구 대우건설 과장

“건설현장은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다 보니 한사람이 빠지면 대체가 어려워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힘들었는데 현장소장님이 예상과 달리 흔쾌히 동의해줬어요. 동료들도 ‘걱정 말고 다녀오라’며 응원해줘 정말 복 받았구나 생각했죠. 아이는 다시 밝아졌고 부족했던 사회성도 회복했어요. 무엇보다 이제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고 잘 따른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캠핑카 타고 호주 여행, 잊지 못할 추억

육아휴직 3개월 동안 이 과장네 가족은 단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첫 두달은 그가 요리·빨래·청소 등 가사일을 맡았고 틈틈이 아이와 놀아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아내와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세식구가 교감하는 데는 3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평소 일할 때는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에 많아야 2시간 정도 아이를 봤으니까요. 가사를 이해하게 된 것 역시 큰 수확이죠. 예전에는 집안에 먼지가 있으면 ‘청소 안했어?’라며 잔소리를 했는데 먼지가 하루 만에 그렇게 많이 쌓이는 줄 미처 몰랐거든요.”

그는 복직 전 마지막 한달 동안 가족과 함께 호주로 캠핑여행을 떠났다. 캠핑카를 타고 바다를 다니며 야외에서 밥을 짓고 잠을 잤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밤바다를 걷다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을 함께 바라보던 추억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딸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던 날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 후 생각날 때마다 또 캠핑 가자는 말을 해요.”

◆포기하는 아빠들 많았다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후 이 과장이 깨달은 사실은 육아휴직을 원하는 동료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그가 육아휴직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주변의 반응은 “부럽다” “어떻게 냈냐” “대단하다” 등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영유아 부모는 각각 1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된다. 하지만 육아휴직 사용률은 41%, 그중 남성 육아휴직은 8.5%에 불과하다.

이 과장은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보호함에도 사회 분위기가 경직돼 있어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 회사가 생각보다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은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의 복직 이후 회사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육아휴직 선배인 그에게 조언을 구한 뒤 실행에 옮긴 동료가 생겼고 이후에도 ‘아빠 육아휴직’이 줄을 이었다. 이 과장은 육아휴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세상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는 “둘째를 낳으면 당연히 육아휴직을 낼 계획이다. 아빠 육아의 변화를 직접 겪어 보니 육아휴직은 단순히 아이 돌봄의 차원을 넘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데 놀랐습니다.(웃음) 육아휴직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이건구 대우건설 과장. /사진제공=이건구 대우건설 과장

◆경제적 문제·사회적 인식 해결해야
차기정부가 육아휴직 기간연장, 육아휴직 급여인상 등 저출산대책을 주요 어젠다로 내세우지만 정책 실효성의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 과장에게 실제 육아휴직 기간 동안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의외로 인사 불이익 등이 아닌 경제적 어려움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껴쓰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고정비가 월급에서 빠져나갔다”며 “생활비를 유지하려고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법정 육아휴직 기간인 1년을 쉬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정부의 육아휴직 지원금은 1인당 한달 평균 69만6000원이다. 임금수준에 따라 최대 10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가 지원되며 85%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나머지 15%는 복직 6개월 후 지급된다. 이 과장은 “매달 85만원이라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많이 모자랐다”며 “공약 역시 육아휴직 기간보다는 급여를 높이는 게 현실적이겠지만 선거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바뀌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 운동회나 학예회에 참여하며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과장은 딸의 운동회와 학예회 때마다 연차휴가를 내고 꼭 참석하는 반면 다른 아빠들의 참여율은 절반 이하로 저조한 편이다. 그의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친해지고 싶어도 부부가 늘 함께 다니다 보니 기회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는 딸의 하교시간에 맞춰 마중을 갔다가 다른 엄마들의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단축근무나 유연근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사에 사내 부부가 있는데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간이 출근시간보다 늦은 9시라 데려다줄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이미 단축근무제가 있거든요. 대학원 진학 시 2시간 조기퇴근을 허용하되 급여를 깎는 구조예요. 만약 육아에 적용하면 부부 중 한사람은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식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요.”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