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법률적 논쟁부터 시작해 이해관계자 비용부담, 공론화 문제 등 난제가 얽히고설켰다. 정부의 강력한 탈원전 의지와 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 등의 강한 반발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쟁점 세가지를 짚어봤다.  

공사가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사진=뉴스1 DB

◆권한남용 vs 적법절차

정부는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지속 여부를 공론화 방식으로 정하기로 하고 진행 중인 공사를 일시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틀 뒤 원전을 운영하는 주체인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중단에 관한 이행 협조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당장 원자력업계, 학계, 야당 등에선 이전 정부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3년 이상 논의해 결정한 사안을 현 정부가 절차를 무시하고 뒤집으려 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장기간 논의 끝에 결정한 사안을 국무회의에서 한차례 논의해 바꾸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한 것”이라며 “원자력안전법에는 원전 건설을 취소하기 위해선 안전상 문제나 절차상 하자가 있을 때 원안위에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협조요청을 한 것은 공익상 필요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며 “에너지법 제4조는 에너지 공급자인 한수원이 국가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할 포괄적인 의무가 규정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수원은 공기업이라는 특수성도 있다”며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앞으로 공론화가 진행될 예정으로 그 결과를 예단하지 않고 공론화 결과를 포함해 각계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의 에너지 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안건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지난 13일 한수원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노조와 지역주민이 본관 로비와 건물 입구를 점검하고 비상임이사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서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수원 이사회는 다음날 오전 경주 스위트호텔에서 기습적으로 회의를 열고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서 노조는 이사회가 강행돼 원전 건설 중단이 가결되면 이사들에게 손실액에 대한 배임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불법적 이사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미래 먹거리인 에너지정책이 졸속 추진된다는 점에서 이사회 개최를 반대한 것”이라며 “정부가 바뀌면서 3개월 만에 (새로운 에너지 정책이) 졸속 추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사 대를 외치며 농성을 하고 있는 한수원 노조원. /사진=뉴스1 최창호 기자

◆천문학적 매몰비용 문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에 따른 비용부담 문제도 갈등을 부추긴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과 관련된 사업비는 8조6000억원이다. 이 중 설계·건설 등 이미 계약된 금액이 4조9000억원이고 1조6000억원이 집행됐다.
여기에 공사 중단에 따른 보상비용 1조원을 더해 2조6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반면 업계에선 이자비용과 이어질 손해배상 소송 등을 감안하면 매몰비용이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당장 삼성물산·두산중공업·SK건설 등 시공사들은 이미 공사 중단 근거 불명확, 납기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문제에 대한 보상안 미제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공사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 곧바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사업에 참여한 협력사에게 정부정책의 진행방향을 알리고 공사 일시중단과 관련한 기간·보상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며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충분히 검토하고 협의해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공론화 정당성 논란

정부는 한수원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하면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 등 4개 분야에서 각 2명을 선발한 뒤 위원장까지 총 9명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원전 지속건설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중립적인 인사들로 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나 에너지분야 관계자를 제외할 계획이다. 따라서 시민·환경단체나 비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돼 전문성과 중립성이 제대로 확보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론화위원회 심의위원 9명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원전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등 정당한 수순을 밟고 국민들의 합의도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공론화 작업을 위한 위원 선정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론화위원회 구성 절차를 진행 중이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위원회 구성을 마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공사 일시중단이 결정된 이후 공론화위원회서 이 문제를 재논의한다는 게 위법 소지가 있어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을 무시하고 정부가 강행할 경우 지난한 민·형사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7호(2017년 7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