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은행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앞세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가 출범하면서 고객들은 더 빠르고 편리한 금융서비스에 열광한다. 자칫하면 기존 시중은행에 충성하던 고객들이 대거 인터넷은행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머니S>는 인터넷은행이 몰고 온 변화와 위기에 직면한 시중은행이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주>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면서 시중은행과 파이 싸움이 치열하다. 지난 4월과 7월 정보통신기술을 갖춰 오픈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시중은행과 금리경쟁을 벌이면서 선전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예상치 못한 돌풍에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무기로 인터넷은행이 순식간에 시중은행의 고객까지 유혹하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은 해법 찾기에 분주하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손을 뻗지 못했던 신사업 외에도 이종산업서비스가 결합된 금융서비스 출시에 속도를 낸다. 또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선보이려면 은행 자율경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케이뱅크. /사진제공=케이뱅크
카카오뱅크. /사진=뉴스1 DB
◆‘왜 우리만’ 감독규제 완화 목소리
시중은행이 이제 막 출범한 인터넷은행에 위협을 느끼는 데는 강도 높은 금융규제 영향이 크다. 획기적인 금융서비스를 선보이고 싶어도 금융당국의 깐깐한 감독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업 감독규정은 103개 조항으로 저축은행(64개 조항)에 비해 1.5배 이상 많다. 2011년 대형저축은행이 연달아 문을 닫은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관련 은행의 감독규정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시중은행 감독조항이 가장 많다.
반면 인터넷은행은 초기시장 안착을 유도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했다. 자본건전성 규제인 바젤Ⅲ를 4년간 연장한 것은 물론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자본과 자산건전성, 수익성을 평가하는 경영실태평가도 3년간 면제했다. 그동안 금감원이 보험회사 등 제2금융회사 설립 초기 일정 기간 경영평가를 유예한 적은 있으나 은행에서 경영평가를 미뤄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조항을 포함한 규제도 엄격하다. 금융당국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금융혁신’, ‘금융개혁’이라는 비전을 내세워 금융제도를 개선했으나 무리한 성과연봉제 추진과 청년희망펀드 동원, 관치와 낙하산 인사로 은행의 자율경영을 가로막았다.
은행 고유업무인 대출금리와 수수료 책정도 당국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8·2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관리기준에 관한 은행업 감독규정 등 5개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강화된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기준을 적용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법제처, 규제개혁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치면 이달 중순부터 부동산대출 한도가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시중은행은 이미 대출한도를 축소해 판매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3일 LTV·DTI 기준을 곧바로 적용하라고 주문해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금리나 수수료 등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감독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은행의 경쟁력은 물론 고객에게 돌아갈 혜택도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머니투데이 DB
◆감사위 확대, 신사업 발굴도 박차
금융당국의 입김이 차단되도록 은행 이사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터넷은행이나 핀테크·P2P업체 등 새로운 경쟁자와 경쟁하려면 은행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중은행은 이사회 안에 감사위원회를 운영해 경영진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상임감사는 은행장에게 올라가는 대부분의 결재서류를 보고하는 자리인 만큼 은행장과 감독당국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서다.
KB국민은행은 지배구조내부규정 제32조 상임감사위원 조항을 개정해 상임감사직 요건을 강화했으며 우리은행은 민간출신 상임감사위원을 선임해 상임감사위원 선임 강제조항을 완화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은행이 관치금융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이사회가 힘을 더 확보해야 한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윤종규 행장의 임기가 오는 11월 만료된다. KB 내부에선 리딩뱅크를 탈환하려면 낙하산 인사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관계 인사가 내부통제를 적절하게 하는 동시에 감독기관과 의사소통을 잘하면 좋지만 방관자적 자세를 견지하며 금융당국의 꼭두각시 노릇에 그칠 경우 은행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어서다.
이밖에 은행이 수익사업을 다변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예·대마진 수익은 오랜 저금리로 쪼그라든 만큼 인터넷은행과 견줄 만한 신사업 창출이 필요하다.
관건은 번거로운 개인인증절차나 추가로 요구하던 서류 등을 획기적으로 축소할 수 있을지 여부다. 시중은행은 핀테크업체에게 무료 업무공간을 제공하고 새로운 디지털 금융상품과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다만 빨라진 핀테크기술 접목에도 공인인증서 요구, 대출서류 제출 시 은행 방문 등의 번거로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공인인증서가 아닌 PKI(공개 키 기반인증)를 도입해 다른 인증서로도 전자서명을 활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공인인증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은행들도 인터넷은행만큼 빠른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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