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3월 미국의 SPA 브랜드 LAP이 국내 시장에 첫 진출했다. SPA 브랜드는 자사의 기획 상품을 직접 제조해 유통까지 하는 소매점을 말한다. 의류뿐 아니라 신발·가발·액세서리·화장품·디자인용품 등 그때그때 트렌드를 반영한 아이템이 다양하게 판매된다. 여기에 LA 할리우드 감성도 담았다. 주 타깃층은 개성 있는 스타일링을 추구하는 20~30대 여성. 국내 진출 1년 만에 매출 500%가 뛰었다.

# LAP을 국내 시장에 들여온 건 에고이스트·플라스틱 아일랜드·마크앤로나 등으로 유명한 여성의류 전문업체 제이씨패밀리(구 아이올리)다. LAP은 국내 진출 뒤 백화점과 아웃렛을 중심으로 영업망을 확대해갔다. 현재 전국 40개 매장 중 백화점 매장이 29개로 압도적 비율을 가지고 있다. LAP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약 600억원.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도 비교적 선방한 500억 안팎이 될 전망이다. LAP의 강점으론 ▲합리적인 가격 ▲2주에 한번 꼴로 신상품 출시 ▲한국인 체형과 패션 트렌드를 더한 점 등이 꼽힌다.


국내를 대표하는 SPA 브랜드로 자리 잡은 LAP. 하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LAP이 그간 국내 시장에서 추구해 온 아이덴티티와 상반된다. 작은 디자인 업체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업계 고질적 문제인 ‘택(tag)갈이’의 제왕이란 이야기. 택갈이는 동일한 옷에 브랜드 상표와 가격표를 다르게 붙여 판매하는 행위다. 카피가 타사 디자인을 베낀 복사품이면 택갈이는 타사 제품을 그대로 가져온 원제품. 과연 사실일까. 의심이 가는 랩 제품 3가지와 동대문 도매상을 통해 일반 쇼핑몰에 유통되는 상품을 직접 구입해 비교해봤다.
디자인·소재·마무리 기법까지… ‘같은 상품’

택갈이가 의심되는 제품은 ▲플라워니트 ▲할로니트 ▲트위드니트 등 3가지. 감쪽같이 잘 베낀 건지 혹은 정말 같은 제품인 건지 디자인과 소재부터 마무리 기법 등을 의류 제조업체 종사자와 함께 꼼꼼히 따져봤다.

LAP 플라워 니트는 소재·사이즈·컬러·문구 등 모든 항목에서 인터넷 쇼핑몰 A사가 판매하는 제품과 비슷하거나 동일했다. ▲총길이 55㎝ ▲어깨 39㎝ ▲가슴 50㎝ ▲소매 65㎝ 등으로 A사와 오차는 1~2㎝ 정도로 미미했다. 할로니트와 트위드 니트 역시 마찬가지. 소재·사이즈·컬러는 물론 디자인 짜임과 패턴을 비롯해 마무리 기법까지 매우 흡사했다.

샘플·패턴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해 온 의류 제조업체 관계자는 “큰 패턴이라든가 사용된 재질과 마감 방법 등이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제조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 입점한 LAP 매장. 택갈이 의심을 받고 있는 제품들/사진=뉴시스. 머니S
엄연히 같은 옷이지만 가격은 달랐다. LAP 판매 제품은 백화점 매장에 걸리며 값이 껑충 뛰었다. LAP 플라워니트는 5만9000원. 인터넷 쇼핑몰 판매 가격은 3만9900원으로 2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LAP에서 판매되고 있는 트위드니트 가격은 6만9000원. 인터넷 쇼핑몰에선 3만7200원에 팔리며 2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할로니트 인터넷 쇼핑몰 가격은 2만5700원이지만 LAP에서는 5만9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달았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카피해 택갈이한 사례도 포착됐다. LAP과 여성복 ‘르샵’에서는 모자에 프릴이 달린 디자인의 동일한 후드 제품을 다른 가격에 판매 중이다. 이 제품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인 클럿스튜디오의 러플후드 카피 제품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디자인. 클럿스튜디오 측에서 관련 특허 출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경우 LAP과 르샵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오히려 저렴했다. 클럿스튜디오의 판매 가격은 7만5000원이지만 LAP에서는 이 후드를 5만9000원에 팔았다. 클럿스튜디오 측은 되려 “같은 제품을 왜 비싸게 판매하냐”는 일부 소비자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행… “불법은 아니야”


결국은 수익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직접 만드는 것보다 중국산 등 원가가 저렴한 옷을 사다 브랜드만 붙여 파는 게 업체 입장에선 훨씬 남는 장사다. 한 철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패션업계 특성상 새로운 디자인 생산하는 데 한계가 크다는 점도 택갈이와 카피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업체들에겐 일종의 수익 전략이 된 셈이다.

LAP 측도 관련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AP 관계자는 “과거 택갈이 관련 문제로 1~2번, 카피 관련 1~2번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면서 “카피의 경우엔 확인 후 전량 폐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은 아니라 괜찮다는 입장이다. LAP 관계자는 “택갈이라고 불리는 사입 상품 중엔 다른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동일한 상품이 있을 수 있다”며 “사입 제품들은 라벨에 랩 플러스라는 표기와 함께 매장에서 고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가격 차이에 대해선 “백화점 입점 매장이고 마진율에 따라 1~2만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체 상품을 만들어 유통까지 담당하는 SPA 브랜드 특성과 관련해선 제작 상품 비중이 100%가 아니라는 해명을 내놨다. LAP 관계자는 “처음에 제작 상품 60~70%, 사입 상품 30% 정도로 시작됐다”며 “지금은 사입 비중을 10~15%로 줄이고 위탁 상품을 늘리는 형태로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비자를 기만한 명백한 속임수 판매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애초에 같은 상품인 줄 알았다면 더 싼 제품을 샀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소비자 박모씨는 “LAP이 택갈이로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백화점 브랜드니 디자인이나 품질 소재 등에서 조금의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제 굳이 LAP에서 비싸게 주고 살 필요가 없어졌다”고 털어놨다.

이재경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는 “택갈이는 상표법 등 위반이므로 엄연한 불법 행위”라며 “최근 사입형 편집숍들이 타사 제품에 임의로 자사 상표를 덧붙여 판매하거나 정품이 아닌 제품을 택갈이 형태로 고가로 판매하는 사태가 여럿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고 조언했다. 서울시에서 11월부터 정품인증 라벨 배포를 통해 택갈이 및 원산지 불법 표기 등의 위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이 교수 측 설명이다.

이정구 한국패션산업협회 차장도 “택갈이의 경우 상표법 위반, 원산지 표시 위반 등을 따져볼 수 있다”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따져봐야 하지만 택갈이 행위는 소비자 권리 침해와 중소상공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