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 지난 22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총학(총학생회) 선거요? 총학의 쓸모를 학생들이 못 느끼는데 누가 투표하러 갈까요. 투표율 50%는 넘기려나 모르겠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재학 시절 단과대학 학생회장을 역임한 이모씨(27)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학생 자치 소멸'은 진행 중이었고 이후 본격화된 것"이라며 총학생회 선거가 외면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6일 대학가에 따르면 제64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정기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대학 학생자치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8일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에 글을 올려 "선거 가투표율이 절반을 넘지 않아 선거가 무산됐음을 알린다"며 "선거의 가투표율은 24.4%"라고 밝혔다.

최근 진행 중이거나 투표를 마친 서울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도 단일 후보자가 출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팀의 선거운동본부가 단독 입후보한 학교는 고려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중앙대다. 2팀이 출마한 학교는 연세대, 건국대, 이화여대뿐이었다.

그중 투표를 마친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는 차기 총학생회를 선출했지만 가투표율이 간신히 절반을 넘은 57%, 57%, 51%를 기록했다.

단과대학·학과 학생회 선거도 무산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6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고를 내고 사회과학대학·이과대학 등 5개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가 입후보한 후보자가 없어 무산됐다고 밝혔다. 23개 학과의 학생회 선거도 동일한 이유로 무산됐다.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서 총학생회장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지난 22일 선거운동원들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대학 학생회 임원을 맡았던 이들과 재학생들은 학생들을 투표장으로 이끌 의제가 사라졌고, 학생회가 새로운 의제를 내놓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서울의 A대학을 졸업하고 재학 시절 총학생회 집행부에서 일했던 곽모씨(27)는 "과거에는 총학이 민주화 등 정치·사회적 개혁에 앞장서며 학생사회 구심점 역할을 했는데, 그런 의제가 사라진 뒤 반향을 얻을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내지 못했다"며 "학생 복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큰 호응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선거가 진행 중인 서울의 B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씨(25)는 "'학교 인근 업체들과 제휴를 늘리겠다', '오래된 건물 도색을 추진하겠다', '운동장에 잔디를 깔겠다' 등 사소한 복지 관련 공약들이 난무한다"며 "다수의 학생들을 공론장·투표장으로 한데 불러모을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심모씨(27)는 "연구비 삭감 문제와 같은, 총학이 학내 토론을 이끌면서도 대학을 근본적으로 더 낫게 할 수 있는 사안을 공약으로 냈으면 한다"며 "그래야 총학의 필요성에 대해 학생들이 공감하고 투표장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이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자치 기구의 대표성을 존중하지 않고, 의견을 수용하려는 태도가 부족한 것이 학생 자치를 퇴보시킨 원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곽씨는 "총학생회 집행부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학교 측의 무시"라며 "축제 운영 시간에 대해 협의하려고 만났는데 학교 측은 미리 정해놓은 시간을 통보하고 총학 의견을 일절 수용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축제 종료시간도 같이 논의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뭘 할 수 있었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 C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던 하모씨는 "학교 측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달라고 하지만 결국 행정팀에서 정해놓은 대로 했다"며 "형식상 총학을 앉혀두고 '답정너'(답을 정해놓고 너는 말만 하면 된다)를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학생회가 학생 대표자로서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다.

올해 총학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는 송모씨(22·이화여대)는 "총학생회가 선출되지 못하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데, 비대위는 학생 대표자로서 권한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할 총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D대학에서 2017년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던 김모씨(28)는 "총장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총학생회장뿐"이라며 "학내 이슈가 발생했을 때 공론장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해줄 총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