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 등 은행권이 건설업종 대출 관리를 강화하면서 건설업계의 추가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 /사진=뉴스1
주요 시중은행이 건설업종에 대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될 조짐이다. 연초부터 신동아건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건설경기 악화 조짐이 뚜렷해진 가운데 돈줄까지 막히면서 중소 건설업체의 줄폐업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건설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건설 불황 장기화 전망 속에 건설업종 대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건설업체 신용평가 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에만 10억원 초과 신규 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신용등급이 다소 취약한 경우 대출의 80% 이상 보증을 조건으로 하는 담보대출만 허용하는 내용이다. 건설업 전망이나 건전성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난해부터 대출 관리를 강화했으나 선제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추가 대책을 적용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예·적금 담보대출, 100% 보증서 담보대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을 비롯한 결제성 자금 등은 예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건설경기 악화가 지속되면서 신용 리스크에 대한 선제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건설업체들의 수익성 리스크가 커지자 대형 은행들은 건설업 대출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건설경기 장기 침체로 업체들의 부실 위험 가능성이 커지자 대형 은행들은 건설업 대출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23년 하반기부터 건설업을 중점 관리 업종으로 선정해 리스크를 점검해왔다. 지난해에는 건설업 연간 순증 대출 한도를 1조2500억원으로 제한했다. 건설업체 중 관리가 필요한 업체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NH농협은행은 2023년 건설업 대출 취급 기준을 강화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대출 심사를 우량 사업장 위주로 선별 실시했다. 건물건설업의 경우 일반적인 신규 여신 취급을 전면 제한하고 있다. 우량 차주만 심사 소관 부서가 예외적으로 취급하도록 했다.


하나은행도 건설업종을 위험업종으로 정해 대출 한도를 보수적으로 관리 중이며 신한은행 역시 건설업종에 보수적 심사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침체 속 환율 상승… 비용 오르자 올 들어 330곳 '폐업'
신동아건설 법정관리 사태를 기점으로 은행권이 건설업종 대출 관리를 강화하면서 건설업계의 추가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2023년 건설업 부진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반영되면서 관련 업종 대출 관리가 강화됐다"며 "기존에도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지만 최근 신동아건설 사태 이후 건설업체들의 신규 대출에 대해서는 신용등급이나 현금흐름, 사업성 등을 심사 단계에서 꼼꼼히 챙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외환 시장이 요동치는 것도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더불어민주당·대전 중구) 의원실이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건설 부문 생산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의뢰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기록할 경우 건설 부문 생산비용은 2023년 대비 2.47% 증가한다.

1500원으로 뛸 경우 건설 부문 생산 비용은 2023년 대비 3.3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출이 막히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지방 건설업체들의 폐업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경기 침체와 대내외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건설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출이 막히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지방 건설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우려는 건설업체 폐업으로 직결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년) 동안 건설업체 폐업 건수는 ▲2020년 2534건 ▲2021년 2856건 ▲2022년 2887건 ▲2023년 356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2.99% 오른 3675건을 기록했고 올 1월에도 벌써 330건(31일 오후 4시 기준)의 폐업신고가 접수됐다. 일부 업종만 폐업신고하거나 업종 전환 등에 의한 폐업신고도 포함돼 있으나 상당수가 사업포기를 이유로 폐업을 신고했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이 거듭된 악재에 대해 "건설업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빌려주기 어렵게 됐다"며 "건설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건설비용도 지속 증가하는 상황으로 업계 돌파구가 없기에 대출을 조이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일정 부분 대출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출 제한으로 자금 흐름이 막히면 유동성이나 프로젝트 진행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며 "자금 여력이 있고 신용도가 좋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서울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지방기업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유동성 확보가 어렵게 되면 폐업 수순을 밟기 때문에 건설업체 폐업률 증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