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이 추진해 온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이른바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소상공인·중소기업 5대 민생입법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온플법 등의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이 추진해 온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이른바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의 이견으로 잠시 멈췄던 국회 논의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발 통상 압박에 따른 글로벌 통상 리스크 속에 재차 유보될 가능성도 있다.
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자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업계는 차기 정부에 대한 규제·지원정책 동향을 파악하는 데 분주하다.

플랫폼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온플법이다. 온플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거래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법안으로 플랫폼과 입점업체의 거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상공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정부와 여당은 플랫폼 규제를 기존 공정거래법의 개정 선에서 풀어가자는 입장이다.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배적 플랫폼 기업이라 하더라도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만 제재를 가하는 '사후 규제' 방식을 도입해 규율하는 것이 골자다.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이용자의 플랫폼 전환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가지 대표적 부당 행위만 금지 대상으로 삼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매출 규모와 월평균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지배적 사업자를 규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2대 국회 들어 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17건 발의했으며 ▲자사 우대·끼워팔기 금지 ▲정산 기간 설정 ▲표준 계약서 마련 ▲손해배상 책임 의무 등 보다 강도 높은 규제 방안을 담고 있다.

규제 체계와 관련해서도 국민의힘과 정부는 시장 지배력 남용 문제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입점업체 보호는 유통업법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통한 대응으로는 부족하다며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라는 별도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반론을 펴왔다. 이같은 여야의 입장 차로 국회에서는 법안 처리가 지연돼왔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서 플랫폼 업계는 규제 환경의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들어 플랫폼 규제 강화 목소리를 다시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22대 국회에서 발의한 온플법 관련 법안 17건을 대상으로 전문가 비공개 공청회를 열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플랫폼 독점규제·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민생입법 5대 과제로 선정하고 입법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회에서 당장 법안이 처리되지 않더라도 야권 대선 주자들이 온플법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민심 공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약 700만명에 달하는 소상공인 업계는 대선에서 표심을 좌우할 '민생 표밭'으로 꼽힌다. 정보 비대칭이나 플랫폼 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피해를 입어온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사전 규제 기반의 온플법이 실질적인 보호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플랫폼 업계는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앞선 대선에서 이 대표는 온플법 입법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으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부터 플랫폼 산업의 공정화와 사용자·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공공 개입형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민주당과 소상공인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민생경제 간담회에 참석해 소상공인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이 대표 외에도 야권 내 복수의 대선 주자들이 플랫폼 규제 강화를 시사하고 있으며 조국혁신당 역시 플랫폼 독점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향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사후 규제' 중심의 정책 기조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해 규율하는 방식으로 플랫폼 규제의 방향이 전환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트럼프 통상 압박 수위 높여… 플랫폼 규제 강화 유보 또는 완화 가능성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금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며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정조준하고 나선 점은 변수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서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행정명령 서명식 중 "한국, 일본과 매우 많은 다른 나라들이 부과하는 모든 비금전적 무역 장벽이 어쩌면 최악"이라고 말하는 모습.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금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며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정조준하고 나선 점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한국은 최악의 비금전적 규제 조치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 비관세 조치인 온플법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껏 미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에 불리한 해외 규제를 무역장벽으로 간주하며 통상 보복 조치를 시사해왔다. 만약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플랫폼 규제 강화를 일정 부분 유보하거나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 업체에도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국이 급변하면서 논의의 판은 바뀌었지만 법안 처리까지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대선 주자들이 어떤 구체적 정책 비전을 내놓느냐에 따라 입법 동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