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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정변, 이승만 정부에 대한 불만이 원인━
5·16 군사 정변에 가담한 인물은 박 전 대통령, 김종필, 육군사관학교 8기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쿠데타 세력은 예비 사단 병력, 포병단, 해병대, 육군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해 1961년 5월16일 새벽 서울, 대구, 부산 등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했다.
이들은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공식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장도영과 통수권자 대통령 윤보선을 회유해 국무총리 장면을 사퇴시키고 쿠데타 60여시간 만에 제2공화국 헌정을 무너뜨렸다. 쿠데타 세력은 위헌 수단으로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을 탈취해 자신들이 조직한 군사혁명위원회가 대한민국 통치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했다.
5·16 군사 정변 이틀 후인 1961년 5월18일 박 전 대통령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장도영을 세우고 자신은 부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개편했다. 이후 1962년 12월31일까지 전국 모든 정치인 활동 불법화, 언론 사전 검열 실시, 정기 간행물 1200여종을 폐간하는 등 2년 반 동안 군정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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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장에서 대통령 된 박정희━
군사 정부를 이끌었던 박정희 육군 소장은 5·16 군사 정변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박정희 정부는 조국 근대화를 내세우며 공업화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후 성장 위주 경제 정책을 펼쳤다.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경제 성장과 국력 배양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민주주의를 실현 의지는 약했다. 장기 집권을 위해 3선 개헌을 강행했으며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으로 국내외에서 독재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다.<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