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가시화된 가운데 KT의 결정이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산업의 숙원으로 불리는 티빙과 웨이브의 통합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으로 9부 능선을 넘었다. 남은 건 양사 주주 간 협의인데 2대 주주인 KT 자회사 'KT스튜디오지니'의 입장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합 성사 여부에 긴장감이 흐른다.

공정위는 CJ ENM 산하 티빙과 SK스퀘어·지상파3사가 공동 투자한 웨이브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주요 조건으로는 ▲2026년 말까지 기존 요금제 유지 ▲통합 OTT에서도 유사 수준의 요금제 운영 등을 제시하며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승인으로 통합 OTT 출범은 공적 기관의 허들을 넘은 것이지만 마지막 고비는 남아 있다. 양사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티빙 지분 13.5%를 보유한 2대 주주 KT스튜디오지니가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커 통합 논의가 진척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KT는 통합 OTT에 회의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김채희 KT 미디어·콘텐츠 부문장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KT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KT는 자회사 KT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콘텐츠 제작 및 유통 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수요처로 작용할 수 있었던 OTT 플랫폼이 통합되면 자체 콘텐츠 유통 채널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티빙과 맺은 전략적 파트너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KT 산하 OTT 시즌과 티빙이 합병하면서 양사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KT는 자사 인터넷TV(IPTV) 서비스 '지니TV'에서 티빙을 비롯한 OTT사들과 제휴를 확대해왔는데 티빙과 웨이브가 합쳐질 경우 웨이브와 긴밀한 또 다른 IPTV 사업자 SK브로드밴드에 잠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력 관계가 결과적으로 재조정돼야 하는 만큼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통합 OTT가 규모의 경제를 갖춘다고 해서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라고 본다. 웨이브의 경우 SBS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면서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이 무너진 마당에 합병 법인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냐는 것이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KT는 콘텐츠 수급과 유통에 있어 주도권이 약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J ENM은 해외 OTT사인 넷플릭스 등 외국 플랫폼의 득세로 국내 OTT 시장이 잠식되고 있다고 판단,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통해 이에 맞서야 한다고 본다. 콘텐츠 역량과 플랫폼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OTT 플랫폼을 탄생시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 역시 새 정부 출범 이후 K콘텐츠 육성과 토종 OTT 플랫폼 강화를 위한 정책적 의지로 보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는 "양사 역량을 결집해 이용자에게 더 나은 콘텐츠와 시청경험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K콘텐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