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브로드웨이 극장에 가면 관객들이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온 뮤지컬이야' '한국 원작이래'라고 이야기해요. 배우들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요. 저한테 한국어로 '밥 먹었어요?' 하고 인사하는 배우도 있고요."(웃음)
'토니상 6관왕'을 휩쓴 한국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42) 작가가 토니상 수상 이후 주변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는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천휴 작가와 NHN링크 공연제작 이사인 한경숙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박 작가는 "이민자인 입장에서, 한국 문화가 미국 현지인들에게 배움의 대상이 되고, '어쩌면 해피엔딩'이 매력적인 케이(K) 뮤지컬로 보이는 것 같아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토니상을 받은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은 "트로피를 볼 때"라고 했다. 박천휴 작가는 "토니상 트로피를 (집) 식탁에 올려두고 왔다"며 "이 상징적인 트로피가 제 초라한 뉴욕 집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의 무게만큼 열심히 하는 창작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토니상 6관왕 쾌거의 비결은"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을 받기 전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상' 등 미국에서 주목할 만한 수상 행렬을 써 내려갔다. 토니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들지 않았을까.
"저와 (작곡가) 윌 애런슨은 기대를 안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에요.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안 됐을 때 실망감을 두려워하는 편이기 때문이죠. 사랑의 아픔을 두려워해서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작품 속 '클레어'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상에 대해선 '기대하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었어요."
토니상 6관왕의 쾌거를 올린 비결은 무엇인지 묻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그 비결을 안다면 히트작을 계속 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박 작가는 "저와 윌은 단어 하나를 두고도 며칠씩 끙끙대고 싸울 정도로 치열하게 작업한다"며 "윌은 윌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기에 그런 부분이 관객에게 가 닿을 거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관객의 차이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박천휴 작가는 "한국 관객분들은 감동을 속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브로드웨이 관객들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엔 '와'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고, 둘의 첫 키스 장면에서는 박수로 반응을 해주시더라"며 "물리적인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토니상 수상 후 창작 활동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박 작가는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수상의 압박에 눌리다 보면 결국 저답지 않은 작품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훌륭한 작업 파트너인 윌과 함께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작품을 써 나가겠다"고 전했다.
"박천휴 작가와의 인연은 하늘이 계획"
이날 기자간담회에 동석한 한경숙 프로듀서는 박천휴 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하늘에서 계획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우란문화재단 트라이아웃(시범공연) 때였어요. 그 공연을 보고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 라이선스를 의뢰했죠. 감사하게도 제가 당시 소속돼 있던 대명문화공장을 제작사로 선택해 주셔서 한국 초연과 재연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10년의 인연으로 한경숙 프로듀서는 이번 10주년 기념 국내 공연도 맡게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국내 판권을 보유한 NHN링크가 이번 공연의 제작사로 나서기 때문이다.
한 프로듀서는 "10주년 공연은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새로운 극장 환경에 맞춰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며 "한국적인 정서와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프로덕션 전체가 그 방향으로 애쓰고 있다"고 했다.
한편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까운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박천휴·윌 애런슨이 공동 작업한 이 뮤지컬은 지난 9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각본상·연출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K 뮤지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순항 중으로, 내년 1월 17일까지 공연이 연장됐다. 한국에서는 오는 10월 30일부터 2026년 1월 25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10주년 공연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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