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FI 지분을 전량 확보하면서 SK온과 SK엔무브 간 구조 재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김동욱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SK엔무브 지분을 전량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계열사 SK온과 SK엔무브 간 합병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규모 투자로 유동성이 악화된 SK온은 현금력이 풍부한 SK엔무브와 합병될 경우 재무건전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FI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1200만주)를 전량 인수하기로 했다. 주당 취득단가는 7만1605원이며 이번 거래에 투입되는 자금은 8592억원이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의 지분 100%를 확보하게 된다.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된 윤활유 전문 자회사다. 그동안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IPO(기업공개)를 준비해왔으나, 최근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문제를 지적하면서 IPO는 사실상 무산됐다.

상장 철회 배경에는 중복상장 논란에 따른 규제 리스크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연초부터 중복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거셌고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이를 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IPO를 강행할 경우 정부 기조에 반하는 행보로 비칠 수 있어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SK엔무브 투자를 유치하면서 2026년까지 상장을 완료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상장이 무산되면 FI에 보상해야 한다. 이번 지분 인수는 이런 부담을 해소하는 동시에 SK온과의 합병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장으로 투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외 공장 신·증설과 연구개발 비용 등으로 연간 수조원 단위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이익 창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SK온은 지난해 1조866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16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실이 누적되면서 1분기 말 기준 결손금은 4조3308억원에 이른다.

반면 SK엔무브는 지난해 68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SK온이 SK엔무브와 합병할 경우 현금 창출 기반을 갖추게 되면서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SK온 역시 SK엔무브와 마찬가지로 IPO 부담을 지고 있다. SK온은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2026년 말까지 기업공개(IPO)를 완료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기한은 최대 2028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 상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보유 지분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자에게 사전에 약속한 가격으로 지분을 되사와야 하며 총 매입 규모는 3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선 이번 지분 인수가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시각이 많다. FI와의 계약 조건을 정리하고 두 회사 모두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확보한 뒤 합병을 단행하는 구조다. 지난해부터 SK온과 SK엔무브 합병설은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지분 인수로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다.

SK그룹 내부에서도 이러한 전략을 두고 다각도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합병은 단순히 재무구조를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윤활유와 배터리는 모두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축으로 기술 인프라와 고객기반 공유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 기대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SK온의 높은 탄소배출을 SK엔무브의 저탄소 사업구조로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공시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업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포함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