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헤밍웨이는 1961년 7월2일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사다난한 생을 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글을 남긴 그는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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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 고전이 된 헤밍웨이 작품━
1899년 7월21일 미국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미국 매체 '캔자스시티스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로 활동한 후 그는 이탈리아군에 입대해 운전병으로 활동한다. 1918년 전쟁 중 부상을 입은 그는 집으로 돌아왔고 전쟁에서 겪은 일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토대가 됐다.
1921년 헤밍웨이는 첫 번째 결혼 후 해외 특파원 근무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1926년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첫 소설 작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출판했다. 헤밍웨이는 내전 상황을 바탕으로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작성했다. 이후 헤밍웨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파리 해방 전투, 스페인 내전 등에 종군기자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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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사랑했던 헤밍웨이━
핑카 비히아에서 거주하며 쿠바와 사랑에 빠졌던 헤밍웨이는 1960년 쿠바 카스트로 정권이 외국인 소유 자산을 국유화한다는 소식에 결국 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는 쿠바 하바나 은행 금고에 자신의 예술품과 원고를 남긴 채 결국 쿠바를 떠났다. 당시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쿠바 핑키 비히아에는 그가 보유하던 서적 4000~6000권이 남아있는 것을 알려졌다. 핑키 비히아에 있던 헤밍웨이의 그림과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핑키 비히아 영구 기증 대가로 환수했다.
1959년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에 집을 구한 헤밍웨이는 피폐해진 정신 상태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게 된다. 젊은 시절 발생한 여러 사고와 미국 FBI 감시로 발생한 편집증으로 고통받던 그는 결국 1961년 7월2일 아침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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