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하나시티즌을 이끄는 황선홍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전화기 너머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에게 쓰라렸던 지난 라운드 이야기부터 전하니 예상 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내가 당해보니 상대팀 감독의 심정을 알겠더라"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황 감독이 이끄는 대전은 6월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SK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21라운드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5월31일 안양전부터 4경기 연속 무승부에 그친 대전은 9승8무4패(승점 35점)가 되면서 선두 전북현대(승점 45)와의 격차가 10점으로 벌어졌다.

대전과 황선홍 감독 입장에서는 최근 일정들이 다 아쉽긴 했으나 제주전은 더더욱 곱씹어 볼 경기다.

당시 대전은 전반 27분 외국인 스트라이커 구텍이 상대 수비수 송주훈을 팔꿈치로 가격,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는 큰 악재를 맞았다. 너무 일찍 수적 열세에 처한 대전은, 무작정 라인을 내리지 않고 잘 맞서 싸우면서 0-0 균형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후반 33분 역습 상황에서 정재희가 오른발 중거리포를 터뜨려 극적으로 리드를 잡았다.


보는 사람도 땀이 흐를 것 같던 무덥고 습한 날씨에서 10명이 투혼을 발휘해 승리를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고비를 넘지 못했다. 대전은 후반 추가시간 5분, 제주 남태희에게 동점골을 얻어맞고 1-1 무승부에 그쳤다. 그야말로 '극장골'이 나왔다.


6월27일 제주전에서 대전은 10명이 싸우면서 정재희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종료 직전 극장골을 내주면서 아쉽게 승리가 무산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황선홍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극장골'을 얻어맞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우리가 넣은 적은 많았지만 수비에 집중하다 버저비터를 허용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상대 감독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더라. 후유증이 꽤 크다. 쉬는 내내 문득문득 계속 생각났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내 실수다. 감독 탓이다. 시간 좀 벌어보겠다고 막판에 교체카드를 썼는데 그러면서 괜히 흐트러진 것 같다"고 책임을 떠안은 뒤 "경기가 어떻게 우리 맘대로만 되겠는가. 아쉽긴 하지만 잊고 다시 뛰어야할 것 같다. 훈련만이 답 아니겠는가"라고 전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크호스로 꼽힌 대전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시즌 초반부터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3월초 순위표 꼭대기에 오른 대전은 5월25일까지 선두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K리그1 정상은 전북현대가 사수하고 있다. 전북이 17경기 연속 무패를 질주한 영향이 크지만, 대전도 초반 기세 보단 한풀 꺾였다.

황 감독은 "위기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팀이든 위기는 있다. 지금 고비를 잘 넘겨야한다"고 담담하게 말한 뒤 "아무래도 선수가 많이 바뀌니까 어렵긴 하다. 사람에 따라 전술도 달라져야하고 기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려면 시간도 필요하다. 어렵긴 하지만 잘 헤쳐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대전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바빴다. '최대어'로 평가받았던 수비형 미드필더 김봉수를 품은 것을 비롯해 여승원, 서진수, 에르난데스, 김진야 등 공수에 걸쳐 알토란같은 선수들을 수급했다. 잉글랜드 버밍엄시티와의 계약이 종료된 국가대표 풀백 이명재까지 가세시켰다. 이 자체만 보면 행복한 황 감독이지만, 앞서 누수도 많았다.

리그가 주목하는 젊은 재능 윤도영이 잉글랜드 무대로 진출하고 김현우, 박진성, 임덕근, 김인균 등 무려 4명이 김천상무에 입대하는 등 큰 누수가 있었으니 마냥 플러스 요인만 생각할 수는 없다.

황 감독은 "아무래도 선수들이 많이 바뀌어 어수선한 것은 있다. 나도 과거 포항을 이끌 때나 FC서울 감독으로 있을 때는 이 정도로 큰 폭의 변화를 경험하진 못했다"면서 "기존 선수들과 새로운 선수가 융화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감독이 잘 꿰어내야 하는 것이니 내 몫이 크다"고 했다.


황선홍 감독은 잉글랜드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윤도영에게 강한 신뢰를 보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런 상황에서 홍명보호가 참가하는 E-1 챔피언십 일정 때문에 K리그가 잠시 휴식기에 접어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황선홍 감독 역시 "새로운 합류한 선수들이 몇 경기에 출전했는데 아무래도 원활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시간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 "이제 시즌 절반정도 했는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전북이 엄청 잘하고 있지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우리를 잘 정비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황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브라이턴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제자 윤도영을 위한 덕담도 전했다.

6월18일 김천과의 고별전에서 교체 아웃되며 눈물까지 흘린 윤도영을 떠올린 황 감독은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린 친구"라면서 "도영이는 축구에 대한 생각이 많은 아이다. 의지도 남다르다. 영국에서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와 신뢰의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