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지난달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미사일 발사, 포격, 드론 반격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세 끼 식사를 거를 수는 없다. 재난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호식품이 바로 '렌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콩이지만, 어려울 때 큰 힘이 되는 영양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렌틸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작물이지만, 건강에 좋은 콩이다. 또 한 끼 식사로 충분할 만큼 든든하다. 렌틸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게 소비되지만 주로 수프, 스튜,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다. 파슬리 줄기를 넣고 물을 넣어 살짝 익혀 부서지지 않게 삶은 뒤 샐러드로 햄류를 곁들인다. 인도 식당에서는 '달'(Dal)이라고 해서 콩으로 만든 카레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에게 콩 요리는 주로 장을 담가 먹는 방식이 익숙하지만, 외국에서는 콩을 그대로 조리하거나 다양한 통조림으로 활용한다. 가격도 저렴해 배고플 때 한 끼 해결하기에 좋다. 렌틸은 간단히 해 먹기 좋은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불릴 필요가 없고 요리법이 간단한 데다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요즘 렌틸이 생각난 것은 오래전 프랑스 리옹에서 맛본 비스트로의 렌틸 요리 때문이다. 원래 리옹을 방문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프렌치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곳 셰프인 다니엘 블루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비스트로에서 렌틸 샐러드와 화이트 와인 한잔으로 첫 끼를 해결했다.
익힌 렌틸을 햄과 함께 먹는 샐러드였다. 여기에 샤도네이 와인을 곁들였다. 차게 식힌 와인 잔에 와인을 듬뿍 따라주는 프랑스식 인심도 느낄 수 있었다. 감칠맛에 익숙해진 내게는 뭔가 심심했다. 따로 집어 먹을 게 없어 다 먹는데 꽤 힘들었던 첫 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렌틸은 실속 있는 재료…든든한 한 끼 '뚝딱'
당시는 한여름이라,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리옹은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남쪽으로 향하는지 이해가 됐다. 결국 나는 바다가 가까운 마르세유로 향했다. 리옹의 명성보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아서였다. 마르세유의 바닷바람은 몸을 날려 버릴 듯 강했다. 그렇게 화창한 날에 부는 바람은 답답했던 내 마음에 시원한 빗질을 해주는 듯했다.
성경에는 렌틸 수프 한 그릇에 자신의 상속권을 넘겨버린 에서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인 메티아스 스톰은 렌틸 수프를 놓고 거래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렌틸 샐러드 한 접시에 기대했던 리옹 여행을 그렇게 마친 셈일까.
그 이후로도 때때로 첫 코스로 렌틸 수프를 만들기도 했다. 베이컨을 바싹하게 구운 뒤 파슬리와 함께 올렸다. 단, 다음 날이 되면 렌틸 수프는 단단하게 굳어 육수를 넣고 풀어 줘야 한다.
렌틸은 작은 양으로도 여러 끼를 만들 수 있는 실속 있는 재료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렌틸 수프 한 그릇이 든든한 식사가 된다. 난민 수용소에서는 묽게 끓인 렌틸 수프로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조금이나마 달래기도 한다.
요즘처럼 먹거리 물가가 높을 때는 렌틸은 우리 식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작은 렌틸 한 봉지를 구입해 두면 어떨까. 예기치 못한 비상 상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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