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지난 11일 공청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보완 입법을 위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후속 논의 차원이다.
앞서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여야 1호 합의 법안'으로 처리한 바 있다. 다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대규모 상장회사의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국민의힘과 재계의 우려로 본회의 처리 당시 제외됐던 위 두 가지 쟁점(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가 다시 논의됐다.
집중투표제는 현재 기업이 정관으로 채택 여부를 자율 결정할 수 있으며 의무사항은 아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소액주주가 선호하는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주주가 선임할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행사해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대주주의 감사위원 지배력을 줄이고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현행법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분리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이를 2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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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위원 분리선출, 기업 기밀 유출 우려 높인다"━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개입 가능성을 가장 크게 경계한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는 기업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병행될 경우 외부 세력의 이사회 진입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역시 "(상법 개정은) 소액주주와 대주주의 싸움이 아니다. (재계가)진짜로 두려워하는 건 해외 펀드"라며 "칼 아이칸, 엘리엇 등 수많은 헤지펀드가 한국 자본시장을 짓밟고 떠난 사례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관련 입법이 이뤄지면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이사 자리를 요구하며 대거 진입할 수 있다"며 "10명 중 6명의 이사가 외국인으로 채워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칼 아이칸은 KT&G 정관에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이 없다는 점을 활용,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 3명을 추천하고 모든 이사를 집중투표로 선출하자고 요구한 바 있다.
기업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감사는 회사에 영업보고를 요구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만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현실화될 경우 외부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해 기업 기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우용 부회장은 "감사위원이 외부 인사로 채워지면 사실상 상대에게 '패'를 보여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배제를 금지하는 것은 기업 자율성을 침해하고 자본의 다수결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부회장은 "현행법상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려면 개별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이미 대주주의 지배력은 충분히 견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도 집중투표제를 한때 의무화했으나 기업 경영의 부작용이 커 대부분 자율 규정으로 전환했다"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청회에선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동시에 추진될 경우 기업의 성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최 교수는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상장폐지, 기업 분할, 자산 매각에 나설 수 있다"며 "정부는 기업 성장을 말하지만 이런 규제는 오히려 기업을 작아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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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방어는 뒷전… 한국 기업, 투자·성장 동력 위축 우려━
민주당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목표로 추진 중인 '자사주 의무 소각'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구을) 등은 지난 9일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이기도 하다.
재계는 해당 개정안이 기업의 경영권을 지나치게 위협할 수 있다고 본다. 자사주는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마땅한 방어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간접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최근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자기주식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과 함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는 어려워지고 있다.
최 교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은 기업의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마저 사라지게 할 우려가 있다"며 "기업이 성장, 투자, 주주 환원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 합의로 처리된 1차 상법 개정 당시 함께 논의됐던 기업인 배임죄 부담 완화 문제는 이번 논의 과정에선 사실상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여야는 상법 개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으로 배임죄 완화 조항을 별도 입법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명확한 사유 없이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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