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시절 종종 던졌던 질문이다. 그러면 회의실은 숨죽인 듯 고요해진다. 사장의 특권은 마음껏 질문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이런저런 토론 끝에 의견이 모였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모든 여정에서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회사,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이어지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럼 경쟁사는?"
포지셔닝은 터를 잘 잡는 일이다. 상대를 정해야 우리의 위치도 선명해진다. 여러 후보가 나왔고, 넷플릭스로 정리됐다. 이동의 경험을 단순한 효율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자는 목표였기에, 엔터테인먼트의 혁신자 넷플릭스가 제격이었다.
넷플릭스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 '규칙 없음 (No Rules Rules)'이다. 넷플릭스 공동설립자 리드 헤이스팅스와 인시아드 교수 에린 마이어가 함께 쓴 책이다.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우리의 문화는,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다."
당시 블록버스터 같은 공룡 기업에는 없었지만, 미꾸라지였던 넷플릭스에는 다른 게 있었다. 문화였다. 자율이었고, 신뢰였다. 복장 규정, 휴가 규정, 출장비 지침 모두 딱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요한 건 규칙을 없앤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좋은 사람'을 뽑고, 그 사람을 믿었다. 성과와 문제를 둘러싼 피드백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으며, 자기 통제가 가능한 조직을 지향했다. 능률보다 혁신, 절차보다 사람. 이들에게 자율은, 스스로 자신을 단련할 줄 아는 사람에게 보내는 신뢰였다.
이 모든 것이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넷플릭스가 창업 초기의 기업문화를 지금까지 유지, 발전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것은 다른 문제다. 창업(創業)보다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회사도 낯선 시도에 나섰다. 연결과 확장을 전략으로 고객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 실행했다. 과하다 싶은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매출 목표는 사장실에 붓글씨로 적혔다. 작심의 의례처럼-, 안 해본 방법을 찾게 했다. 복장 규정을 없앴고, 성과관리, 과정관리 기법을 도입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회사들과 손을 잡았다. 모빌리티 시스템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와 시큐리티 서비스 기업과 업무협약을 했다. 철도여행용 도시락을 만드는 회사,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업, 심지어 프로야구 구단과도 함께 하면서 고객경험을 끌어올리기 위한 실험을 했다.
모든 시도 중에서 몇몇은 실패했고, 몇몇은 유야무야 끝났다. 그러나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와 대조되는 세계를 다룬 소설이 있다. 스웨덴 작가 레나 안데르손이 2006년 발표한 소설 '덕 시티(Duck City)'다.
덕시티는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안으로는 숨막히는 도시다. 패스트푸드와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제하며, 뚱뚱한 사람들을 단속하는 곳.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비정상을 규제하는 도시. 그런데, 정상은 대체 뭔가? 누가, 왜 정하는가.
덕시티에는 규칙이 넘쳐난다. 어기면 문제고, 잘 지켜도 문제다. 규칙을 잘 지키면 또 다른 규칙이 생기고, 그 규칙을 관리하는 새로운 부서가 생긴다. 도시는 점점 복잡해지고, 천천히 조용히 멈춰간다. 사람들은 규칙을 두려워했고, 아무도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됐다.
규칙은 처음에는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 위에 올라탔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끝내 아무도 돌보지 않게 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대마불사(大馬不死) 공룡기업들이 몰락하는 방식과 닮았다. 더 잘하려 만든 규칙이 새로움을 가로막는 익숙한 명분이 되는. 규칙은 지켰을지 몰라도 성과는 사라지는 모습 말이다. 넷플릭스와는 반대편에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왜 지키는가다.
"나는 왜 이 규칙을 지키는가. 언제까지 이 룰을 따를 것인가."
이 질문이 조직을 움직이게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 누구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또 누구는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내 결론은 이렇다.
"하지 말아야 할 고만고만한 열 가지 이유와 해야 할 단 하나의 똘똘한 이유가 있다면, 하라."
열 가지 이유는 대개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고, 단 하나의 이유는 낯설지만 본질에 닿아 있다.
기왕이면, 낯선 쪽이 낫다. 특히 공룡과 싸워야 하는 미꾸라지라면. 미꾸라지는 작고 유연하지만, 감각은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다. 감각이 문화가 되는 순간, 그 기업은 더 이상 미꾸라지가 아니다. 중심을 흔들며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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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은행원,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벤처 창업가, 대기업 임원과 CEO, 공무원 등을 지냈다. 새로운 언어와 생태계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문장을 쓰며 방향을 찾았다. 경영혁신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경험과 성과를 쌓았다. 현재 컨설팅회사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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