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미 관세협상에 대해 난타전을 이어갔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서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모습./사진=김성아 기자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 지연과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를 둘러싸고 여야가 거센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협상 지연과 외교 대응 실패를 질타하며 공세를 높였고 정부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방어에 나섰다. 이날 질의에서는 비자 문제, 국방 현안,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입 의혹까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는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미 관세협상을 놓고 치열한 공세를 이어갔다. 첫 주자로 나온 배준영 의원(국민의힘·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은 "미국 정부는 이재명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한미 관세 협상은 도돌이표처럼 돌아가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란 것은 '실책외교'를 넘어 '실망외교'"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한미 양국은 한국산 제품에 15% 상호관세율을 적용하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기타 에너지 제품 구매를 추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협상을 타결했다. 당시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꾸려진 경제사절단도 힘을 보탰다. 4대 그룹 총수를 비롯한 재계 인사 16명이 동행해 기존에 약속된 3500억달러(약 490조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와 별도로 신규 대미 투자 계획을 추가로 제시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후속 조치가 지연되고 통상 협상 불확실성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굴종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통령실이 지난 14일 한미 관세협상 상황과 관련해 "워낙 변수가 많은 협상"이라며 "영점을 계속 맞춰가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는만큼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조 장관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열강들이 과거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아직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해선 정부는 미국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섣불리 합의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가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김건 의원(국민의힘·비례)이 "대미 투자 3500억~4500억달러 규모를 협의했을 당시 문서화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미 측이 제시한 패키지는 우리가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문서화하지 않고 계속 협상하는 게 국익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3억달러 규모로 3500달러의 대미 투자가 이뤄진다면 외환 위기 가능성이 불거질 수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현금 등 직접 투자가 아닌 보증이나 대출 형태의 간접 투자를 선호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하고 그 운용도 미국 측이 전담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조 장관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라는 안전장치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해둔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방식이다. 소위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이라고도 불린다. 조 장관은 "협상 내용을 다 말하지 못하지만 한미 무제한 통화 스와프 요청이 우리가 제시한 여러 제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구금 사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서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구금 사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10여일 만에 미국 조지아주 소재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구금됐다. 이민 당국의 단속으로 구금됐던 이들은 최근 전원 귀국했지만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외교 참사'로 규정하며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 전반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왔다.

배 의원은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지킬 의지도 실력도 없다"며 "한미 상호 방위 조약으로 한국을 지금껏 지켜주던 미국을 왜 이렇게 돌려 세웠는지 국민들은 충격에 빠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는 비자 협정이 해묵은 문제인데도 한미 정상회담 당시 비자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것은 무책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올 상반기부터 미국 비자 문제와 입국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정부 측에 꾸준히 알리며 지원을 요청해왔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외교 당국이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조 장관은 "미 정부와 의회를 접촉해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 신설을 담은 '한국인동반자법' 통과를 요청했다"며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한국인동반자법 관련 의원들을 면담해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 외교 담당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이 사과하고 비자 문제 해법 모색을 약속했다고 했다고 부연했다.

국방 분야에서는 민간인통제선(MDL) 이남 10㎞ 구간을 5㎞까지 축소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공개됐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접경지역 주민의 재산권 침해와 생활 불편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며 "무선인식(RFID) 방식보다는 스마트 앱을 활용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기 없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연말까지 마무리될 수 있도록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교·안보와 직접 관련 없는 질의로 여야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이어갔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공세를 이어갔다.

부승찬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은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특정 인사들과 만나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이른바 '조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제보'를 언급했다. 이에 김 총리는 "사실이라면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진위가 명확히 밝혀지는 것이 낫겠다"고 답했다.

또 탈북민 출신 박충권 의원(국민의힘·비례)은"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했던 것처럼 뒷돈이라도 갖다주실 겁니까"라고 발언해 마찰을 빚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면책특권을 이용해 허위사실을 공표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박 의원과 정 장관이 설전을 벌이자 양측 의석에서도 고성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