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이사장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29일 전남 목포시 방공호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대 상경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감시로 평범한 사회생활 기회를 얻지 못하고 부친을 도와 민주화운동을 했다.
그는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투옥되자 모친인 이희호 여사를 도와 재야인사들과 함께 구명 운동을 펼쳤다. 이 여사를 비롯한 관련자 부인들이 입에 검은 십자 테이프를 붙이고 벌인 침묵시위는 당시 16세이던 김 이사장의 기획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이사장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시위 배후 조종 혐의로 지명수배돼 3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부친과 함께 동행해 미주 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했다. 특히 그는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사건을 폭로한 인재근 전 의원의 녹음테이프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해 전 세계적 연대를 이끌어냈다.
김 이사장은1987년 귀국 후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돕기 위해 정치 홍보·기획사를 설립했으며 1997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말기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어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당선돼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김 이사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품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묵묵히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부친의 영광 뒤에서 고난을 함께 짊어졌던 아들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한 여정의 든든한 동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별세로 김 전 대통령의 3남은 막내인 김홍걸 전 의원만 남게 됐다.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장기간 투병하다가 2019년 4월20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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