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 일원에 '넥스트 홈' 테스트 베드를 공개했다. 사진은 테스트 베드 전경. /사진=최성원 기자
"자, 벽면을 밀어보세요. 분리돼 있던 공간은 하나가 됩니다."

삼성물산 직원이 방의 한 쪽 벽면을 밀자 다른 방의 모습이 펼쳐졌다. 두 개였던 방이 하나가 됐다. 벽을 하나 더 밀면 방부터 거실까지 오픈형 집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주거 공간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분리하고 결합할 수 있는 것은 '넥스트 라멘' 구조 덕분이다. 라멘은 독일어로 기둥과 들보를 이루는 철골이 이어진 건축의 구조 형식이다. 기존 벽식 구조는 집 내부의 기둥을 움직일 수 없다. 넥스트 라멘 구조는 기둥들을 집 바깥으로 빼냈다. 수직 기둥과 수평 부재인 보틀이 액자의 틀처럼 구성돼 거주자가 틀 안에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지난 26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일원에 마련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넥스트 홈'(Next Home) 테스트 베드(실증 공간)를 방문했다. 삼성물산은 전용면적 84㎡의 두 공간을 활용해 넥스트 인필과 넥스트 라멘 등 차세대 주거 기술을 소개했다.
자유로운 공간 활용 돕는 '넥스트 인필' 기술
넥스트 인필 기술을 이용하면 자유로운 공간 분리와 확장이 가능하다. 사진은 넥스트 퍼니처월을 밀고 있는 삼성물산 관계자. /사진=최성원 기자
행사 참여자들의 이목을 끈 건 넥스트 인필 기술이었다. 넥스트 인필은 ▲넥스트 월 ▲넥스트 플로어 ▲넥스트 베스 ▲넥스트 퍼니처 등 차세대 기술들을 총망라해 일컫는 말이다. 세대 내부를 구성하는 바닥과 벽, 욕실 등이 모듈형 조립식 형태로 구성돼 거주자가 취향에 따라 손쉽게 집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넥스트 월은 자유로운 공간 분리와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벽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이유는 천장에 배선이 깔려있고 벽 안엔 전기와 설비라인이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을 옮긴 뒤 천장 배선과 벽에 내장된 배선을 연결하면 이동이 완료된다. 벽 마감재도 탈부착할 수 있어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인테리어 연출이 가능하다.
바닥 하부 공간에 각종 배관들이 설치돼 있어 거주자 취향에 따라 주방이나 화장실 이동이 가능하다. 사진은 넥스트 플로어의 내부 모습. /사진=최성원 기자
주방이나 화장실의 위치도 바꿀 수 있어 참여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넥스트 플로어다. 바닥 하부 공간에 각종 배관들이 설치돼 있다. 주방이나 욕실을 옮겨도 벽과 같이 배관을 연결하면 어디서든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배관 설치가 불필요한 곳은 바닥 높이를 최대 30㎝ 낮춰 층고를 높였다.


층간소음 감소 효과도 뛰어나다. 바닥 하부에 마련된 이중 스프링 구조가 소음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삼성물산은 2022년 건식바닥 충격음 차단성능 1등급을 받았다.
OSC 공법으로 제작된 넥스트 베스는 공간 전체가 원하는 위치로 옮겨질 수 있다. 사진은 POD 욕실 내부. /사진=최성원 기자
참여자들의 발걸음은 움직이는 화장실 '넥스트 배스'로 향했다. 넥스트 배스는 프레임부터 마감까지 일체형으로 제작되는 POD(포드) 욕실과 제작된 구성 요소들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시스템 욕실로 나뉜다.

POD 욕실은 공간 전체가 한 번에 움직이고 시스템 욕실은 구성 요소들을 옮길 곳에 재조립하는 방식이다. 공간 전체가 이동할 수 있는 이유는 OSC(탈현장) 공법 덕분이다.
넥스트 퍼니처는 옷장과 장식장 등 다양한 형태로 벽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장식장 형태의 넥스트 퍼니처. /사진=최성원 기자
현재 입주자들이 옵션으로 선택하고 있는 넥스트 퍼니처도 이목을 끌었다. 벽이 아니더라도 옷장과 장식장 등의 다양한 형태의 넥스트 퍼니처가 공간을 분리·통합할 수 있다. 가구 자체가 하나의 벽 역할을 한다. 특수 모터를 활용한 전동식으로 개발돼 거주자가 직접 밀어 배치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해 환경 보호와 공사 기간 단축을 실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모든 시공을 진행하는 현장타설은 폐기물이나 시멘트 유출로 인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삼성물산은 넥스트 홈 기둥과 보에 OSC 공법을 적극 도입할 방침이다. 넥스트 플로우와 넥스트 배스도 외부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환경 보호와 공기 단축을 실현할 계획이다.
높은 시공비 부담… 협력업체 기술 도입 과제
시공비 절감과 협력업체 기술 적응 문제는 넥스트 홈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사진은 넥스트 홈 기술이 도입된 방 모습. /사진=최성원 기자
다만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라멘 구조는 벽식 구조보다 시공비가 더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주로 고층 아파트나 업무용 빌딩에 많이 투입된다. 넥스트 라멘 구조도 이러한 한계를 가진다.

변동규 삼성물산 주택기술혁신팀장은 "프로젝트마다 차이가 있지만 시장 활성화가 안 돼 비용이 적진 않다"며 "서울 성수동과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착공 예정인 40층 이상 고층 아파트부터 도입해 활성화한 뒤 대량 생산 체계로 전환한다면 시공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시공자들의 기술 적응 문제도 있다. 넥스트 인필 기술은 현재로선 삼성물산이 직접 시공하고 공급해야 한다. 현장에선 삼성물산의 협력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변 팀장은 "삼성물산은 협력사와의 생태계를 중요시하기에 동반 성장하는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자체 생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협력사들이 넥스트 기술을 구현하도록 돕고 협력사가 더 잘 만든다면 규모도 확대하겠다"고 전했다.